Updates from 9월, 2004 댓글 스레드 토글 전환 | 키보드 단축키

  • ukits 2004/09/21 05:13 AM 고유주소 | 댓글달기  

    Here is Frankfrut 

    며칠만이지?
    한국 민박집을 찾아 오랫만에 인터넷을 쓸 수 있게 되었다.
    그동안 썼던 일기와 사진을 올리는데, 내가 여행 중 느꼈던 감정이 그대로 전해지지 않는 것 같아 아쉽다. 물론 나는 나중에 읽으면 기억이 나겠지만 말이다.

    지금 내 꼴은 말이 아니다.
    안그래도 푸석푸석한 머리는 계속 갈라지고, 햇빛에 그을린 팔과 다리는 허옇게 껍질이 일어난다. 살은 빠질 대로 빠져서 군대에 들어갈 때 몸무게였던 69kg 이 되었고, 앙상한 갈비뼈에 근육만 조금 나와있다.

    아, 빵만 먹으니까 방구만 나온다. –;

    나의 이 어설픈 자전거 여행이 다른 사람들의 배낭 여행과 다르고 더 멍청할 지라도 분명 얻는 건 정말 많다. 다른 여행자들이 얻는 걸 내가 못 얻었다면, 그들이 얻지 못하는 걸 나는 얻을 수 있기 때문에…

    우리나라가 그립고, 우리 말/글이 그립고, 사람이 그립고, 집이 그립다.

    조금만 기다려라! 내가 돌아간다!

     
  • ukits 2004/09/21 05:03 AM 고유주소 | 댓글달기  

    14. 디텐하임 

    diary – 14. Dietenheim

    2004년 09월 18일 (토) in 디텐하임

    오늘 아침은 조금 피곤함을 느꼈다. 별로 무리한 것도 없는데…
    문득 잠자리에 더 파고 들고 싶다는 생각이 들자 내가 벌써 이런 불편한 잠자리에 익숙해져버렸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고 보니 이 호스텔은 도미토리가 혼숙이다. 헉. 여기저기서 여자들이 부시시 일어난다. –; 암스테르담 호스텔이 혼숙이라해서 꼭 한번 가보고 싶었는데 그럴 필요가 없을 것 같다. 여자들을 의식 해야되니 별로 안 좋다.

    일찍 식당에 내려가 아침식사를 했다. 젊은 사람들이 많아서 식당이 학교 기숙사 분위기가 나는데, 음식들을 마음데로 가져다 먹을 수 있어서 좋았다. 체크아웃 준비를 했다. 자전거 복장을 입으면서 한숨이 절로 나온다. 또 자전거구나… 휴-.
    자전거를 타고 목적지에 도착했을 때의 그 정복감이나 성취감은 대단한 것이지만 막상 자전거에 올라서 출발하기가 무섭다. 오늘은 얼마나 헤메려나, 얼마나 달리려나…

    디텐하임은 엇그제 기차에서 만난 할아버지들이 사는 마을인데 마을 자체가 그리 크지 않은 시골이라 뮌헨에서 바로 가는 길이 없어 ‘ㄱ’자로 꺾어 가야한 한다. 도로의 이정표도 발견할 수가 없다. 할아버지들도 자전거로 오기 보다는 근처 큰 도시인 우임Ulm까지 기차로 와서 우임에서 디텐하임까지 25km정도만 자전거로 오라고 말했었다.
    하지만 난 고집을 부려 자전거를 선택했고… 그 댓가로 결국 도중에 세번이나 길을 잃었다.
    목적지가 프랑크프루트 같은 대도시라면 이탈리아에서 로마를 찾아갔듯이 이정표만 보고 따라가면 되는데, 이번엔 시골길을 달려야 하기 때문에 무척 힘들었다. 길도 꼬불꼬불하고…

    점심 때 쯤 어느 마을에 들러 중국식당을 발견하고 점심을 닭고기 볶음밥을 먹었다. 이것도 얼마만에 밥이냐… 상당히 맛있었다.
    주인집 아들이 단번에 한국인이냐고 알아본다. 내가 다시 물어봤다. 유럽사람들은 당연히 일본인인줄 알고, 일본인들도 일본인인줄 알고, 한국인들도 일본인인줄 아는데, 어찌 한국사람인줄 단번에 알아봤냐고. 일본사람은 키가 작은데 너는 키가 커서 한국 사람으로 보였다고 한다. 은근히 기분이 좋은걸-.

    두번이나 길을 잃었다. 한 마을은 3번이나 같은 길을 지나치기도 했다. 내가 마법진에 들어온 것 같았다. 나침반을 봐도 길을 못찾으니…
    그렇게 100km 정도 자전거로 가서 도착한 아우구스부르그Augsburg에서 결국 포기하고 기차를 탔다. 요금을 계산해 보니 아우구스부르그에서 우임까지 12.90, 뮌헨에서 우임까지 18.xx 겨우 0.5 정도 아끼려고 빡시게 오전을 허비했단 말인가… 허무감이 밀려온다.
    하지만 그 때라도 기차를 탄건 잘 한 일이었다. 기차를 안탔으면 할아버지들과 약속한 날짜에 도착하지 못할 뻔 했다.

    우임에서 디텐하임까지는 남쪽으로 약 25km. 우임역에 도착해 기차에서 내렸을 때는 해가 서쪽하늘을 벌써 붉게 물들이고 있었다. 무조건 남쪽으로 난 길로 자전거를 몰았다. 물어물어 찾아가다 보니 또 한치 앞도 구분할 수 없는 어둠이 찾아오고야 말았다. 내가 이탈리아 산 속에서 치를 떨었던 야간 주행. 두렵다.
    다행히 뮌헨에서 깨진 랜턴 전구를 새로 구입했기에 망정이지 아니면 또 중간에서 발이 묶일 뻔 했다. 깜깜한 도로에서 시험삼아 랜턴을 꺼보았는데 이탈리아 산을 넘을 때 처럼 아무것도 안보이는 것이었다. 정말 다행이다. 빛이 있다는 것에 감사했다.

    한 마을에서 낙엽을 치우고 있던 아저씨에게 길을 물어보았다. 무척 험상궂게 생긴 아저씨였다. 친히 집에 돌아가 지도를 가지고 나와 보면서 설명해준다. 독일 사람들은 정말 친절하다 라는 인상에 못을 박는다. 정말 아저씨가 알려준 것과 똑같이 길이 펼쳐졌다.
    바나나도 기차에서 다 먹어버리고 힘겹게 어두운 길을 가노라니 신세가 처량하게 느껴진다.

    어찌어찌 디텐하임에 도착해서 길가는 사람에게 브루거Brugger 할아버지 집을 물어 찾아갔다. 이미 10시가 다 된 시간이었는데, 문을 열고 나온 할아버지가 정말 반갑게 맞아주었다.
    뒤뜰에 있는 별채로 나를 안내해 잠자리를 마련해 주었다.
    할머니(정말 젊다)와 13살 작은 딸(할아버지인줄 알았는데 아저씨네)과 잠시 이야기를 나누었다.
    오후 내내 내가 오길 기다렸다고 한다. 그래서 엇그제 같이 있던 할아버지와 ‘그 놈이 안올란갑다’ 하고 포기하고 있었는데 저녁 늦게 와서 정말 반갑다고 했다. 늦게라도 찾아오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일기를 쓰는 지금은 원래 건물로 모두 돌아가고 별채에 혼자 있다.
    집이 궁궐같다. 별채에다가 자동 커튼에 차고, 정원 등등… 이 정도 능력이 되니 자전거를 여가로 즐기지 하는 생각도 들었다. 하지만 다 자기가 열심히 한 만큼 사는 것 아니겠어.
    또 하나의 목표가 생긴다. 이런 집 갖기.

    씻고 났더니 피곤이 몰려온다. 오늘도 즐거운 하루…

    2004년 09월 19일 (일) in 디텐하임

    처음 이곳에 오기 전에 생각하길 내 여정에 따라 지나가는 길에 하룻밤 신세지며 묶어가는 것으로 생각했었다. 할아버지들은 나를 귀찮은 손님 정도로 생각하지 않았다. 더구나 지금 내가 있는 곳은 정말 편하고 가족적인 분위기에 내가 전혀 방해도 안되고 한 한달 정도 있어도 티도 안날 만큼 큰 집에 부족한 것 없이 살고 있기 때문이다. 뭐, 그래서 염치는 없지만 하루만 더 묵기로 했다.

    무엇보다 이 집 사람들은 여유롭다. 일에 쫒기거나 급하지 않고, 주말마다 여가를 즐기고 평일에는 집을 가꾸고 청소하고 일찍 잠자리에 든다.

    부족함이 없어서 여유로운 것일까, 여유로워서 부족함이 없는 것일까.

    시리얼 , 빵, 케익, 과일, 야채, 우유, 쥬스 진수성찬에 아침을 배불리 먹었다. 안주인 할머니가 신경을 많이 쓴 것이 눈에 보인다.

    식사를 끝내고 근교로 두 할아버지와 함께 자전거를 타고 하이킹을 갔다.
    그림같은 독일 전원풍경을 달려 산길을 접어 들자 할아버지가 취미로 기르는 꿀벌집이 나왔다. 근처에 아카시아 꽃이 많아 좋은 꿀이 난다고 했다.

    숲길을 빠져나와 근처 레스토랑에서 차를 타고 온 할아버지 가족들과 점심을 먹었다. 물론 나는 얻어먹었다.
    메뉴판을 봐도 알아먹을 수가 없었지만 쌀이 그립다고 허니 스테이크에 라이스가 나오는 메뉴를 시켜주었다.

    돌아오는 길에 할아버지가 예전에 선수로 뛰었던 축구팀의 경기를 관람했다. 아쉽게도 졌다.

    집에 창고에는 빔프로젝터와 탁구대가 있는데, 탁구를 쳐서 할아버지, 할머니, 작은딸 이렇게 세명한테 모두 졌다. –;

    테이블에 둘러앉아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는데 딱 보면 잘 살 수 밖에 없다고 느껴진다.
    호탕한 성격에 여유가 넘치고, 운동도 잘하지, 정말 모든게 부러움의 대상이자 나의 목표로 설정되는 것 같다.
    작은 딸에게 우리나라 식으로 숫자를 읽는 법을 알려줬더니 매우 신기한 듯 계속 숫자를 만들어 보면서 좋아했다.

    원래는 내가 사진을 찍어 나중에 인화해서 보내주려고 했는데, 할아버지가 더 좋은 사진기를 가지고 있었다. –; 결국 내가 사진을 받기로 하고 주소를 다시 한번 알려주었다.

    사과로 만든 와인인 아펠바인 독한 버젼을 한 잔 먹었다.

    여행 이후에 최고로 편한 잠자리, 맛있는 음식에 가족적인 분위기를 느끼니 여행의 묘미가 이런 것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따지고 보면 운이 참 좋았던게지…

    단지 평범한 할아버지, 할머니 사는 집이겠거니 하고 찾아온 집이 자연을 사랑하고 여유롭게 삶을 즐기면서 살아가는 멋진 곳이라니.. 아마도 나는 평생의 목표를 이 브루거 할아버지에 맞춰야 하지않을까 싶다.

    내일 다시 프랑크프루트로 떠난다. 할아버지가 퓌센Fussen이나 하이델베르크Heidelberg가 좋다고 추천을 해주었는데, 이곳 디텐하임에서 이틀을 소비하며 많은 것을 구경했기 때문에 그냥 바로 프랑크프루트로 가기로 했다.
    내일도 함께 우임으로 가서 함께 관광을 하고 나를 환송해주겠다고 한다. 정말 몸둘 바를 모르겠다.

    뜨거운 물에 샤워, 독한 와인 한 잔, 따뜻한 오리털 이불… 집에 온 것 같다.

     
  • ukits 2004/09/21 05:02 AM 고유주소 | 댓글달기  

    13. 뮌헨 

    diary – 13. Munchen

    아니나 다를까 7시 정도에 눈이 떠졌다. 집에서도 매일 이러면 얼마나 좋을까. 어머니한테 사랑받을 텐데…
    조금 게으름을 부리며 뒤척이다가 아침을 먹으러 식당엘 내려갔다. 역시 큰 호스텔 답게 뷔페식으로 음식도 다양하고 맛있어 보였다. 그래봤자 기본이 되는 건 빵이다… 밥이 그립다!
    햄이나 치즈, 요구르트, 꿀, 코코아 이런 것들과 같이 아침을 배부르게 먹었다.
    아, 어제 만난 짱꼴라들하고 같이 앉아 먹었는데 독일 유학생이라 했다. 어쩐지 여행자처럼 보이지는 않았다. 중국 하면 못사는 나라로만 생각했었는데, 젊은 인재들이 해외에 나와 있는 걸 보니 짱개국의 미래가 그리 어둡지만은 않구나..

    오늘 뮌헨의 일정은 뮌헨 역 – 신시청사 건물 – 독일 박물관 – 영국 정원 – BMW박물관 – 다하우 수용소이다,

    다시 역에 돌아가 information에서 지도를 사고 곧바로 신시청사 건물로 향했다. 가는 길이 차가 다니지 않은 ‘차없는 도로’라 자전거도 내려서 걸어야 했다. 사람들이 북적북적한 쇼핑거리를 이것저것 구경하면서 광장에 도착하니 마침 11시가 되었다.
    시청사 건물에는 대형 시계가 있다. 큰 시계 밑에는 인형들이 있는데, 하루 중 11시에만 그 인형들이 빙글빙글 돌면서 퍼포먼스를 한다고 한다. 그걸 고려하고 온 것은 아니었는데 운이 좋았는지 시간이 맞은 것이다. 사람들이 벌떼처럼 몰려 그 광경을 구경했다. 그리 대단하지는 않았다.

    이곳 스포츠매장에서 자전거 라이트 전구를 구입했다. 그 구하기 힘들었던 미니 맥라이트 전용 전구 2개 세트! 이제 밤에도 안심이다. 뭐, 이제 밤에 달릴 계획은 없지만서도…

    다음으로 간 독일 박물관은 예전에 어렸을때 간 어린이대공원 과학관처럼 버튼을 누르거나 직접 기구들을 조작해 과학 원리나 현상들을 시험해 볼 수 있게 되어있었다. 규모가 훨씬 컸다.
    해양, 전기, 철도, 화학, 원자, 음악, 물리, 빛, 항공 등 다양한 분야로 나뉘어져 있는데 너무 커서 길을 잃을 뻔 했다.
    마지막엔 번개 실험도 보았다. 거짓말 좀 보태서 번개를 맞은 각목이 이쑤시게가 되어 떨어지는 것을 보았다.
    이걸 다 보느라 시간을 너무 많이 소비해 버렸다. 근데 정말 유익한 시간이었다.

    BMW박물관 가는 길에는 영국 정원이라고, 큰 공원이 있었다. 좁은 강물이 흐르고 잔디밭이 펼쳐져 있다. 그 잔디밭에서 사람들이 발가벗고 누워서 일광욕을 즐겼다. 해변이 아닌데도 말이다. 어찌나 민망하던지 고개를 뗄 수가(?) 없었다. –; 어떤 사람은 모자만 쓰고 (다른거 하나도 안 입고) 강물에 들어가 수영을 하기도 한다…
    사람들이 다니는 길가에서 먼 곳에서는 젋은 아가씨들도 나체로 누워있는 걸 봤지만 가까이서는 확인을 못 했다.

    길가의 Pub에서는 사람들이 맥주를 우리 2천cc 잔 만한 컵을 가지고 먹는다. 역시 1인당 맥주 소비 1위 도시답다.

    BMW박물관이 있는 올림픽 공원에서 샌드위치와 샐러드를 늦은 점심으로 먹고, BMW박물관 구경. 조그맣고 볼게 별로 없었다. 엄지 손가락만 자동차미니어쳐들이 있었는데 무지 비싸서 못샀다. 청기가 이런 걸 좋아하는데.
    다하우 수용소는 독일인들이 유대인들을 강제 수용하던 곳인데, 과오를 뉘우치는 의미로 박물관으로 만들고 무료로 개방하고 가이드를 해준다. 독일이 일본처럼 침략 전쟁의 주범이지만 과거를 반성하느냐 반성하지 않느냐의 차이는 굉장한 것이다. 너무 외곽에 자리잡고 있어서 자전거로 다녀오는데 시간이 오래 걸릴 것 같아 가지 못했다.

    내일은 뮌헨을 뜨기로 했다. 자전거를 타고 시골길을 달려야 하기 때문에 다시 뮌헨역으로 돌아가 독일 전도를 사고, 돌아오는 길에 자전거에 바구니를 달았다.
    이제 폼이고 뭐고 소용 없다. 편안한게 제일이다. 그동안 폭이 좁은 뒷 짐받이에 올린 베낭이 좌우로 흔들려서 신경쓰느라 안전운행에 방해가 되었는데 이제 바구니로 고정이 되면 편하게 운전할 수 있을 것 같다. 진작에 이랬어야 했다. 아니면 다른 여행자들이 그러는 것처럼 자전거 투어용 가방을 처음 부터 달던지…

    호스텔에 일찍 돌아와 씻고 휴식을 취했다.

    이탈리아가 오토바이 권장정책으로 오토바이 비중이 크다면, 독일은 자전거의 비중이 크다. 자전거 종류도 참 다양하고 앞뒤로 가방도 많이 달렸고, 하이바를 쓰거나 안전띠, 바구니를 다는 걸 아주 자연스럽게 생각한다. 조그만한 아이들까지도…
    자전거 도로는 우리나라와 비슷한 정도로 있지만 형식적으로 만들어 놓은 우리나라와는 틀렸다. 자전거 도로에 간판 나오고 차 주차되있고 턱 높고 이렇지 않다. 자전거 도로를 따라 자전거로 달리면 차나 보행자의 방해를 거의 안 받고 제 속도를 낼 수 있게 만들어져 있다.
    내가 자전거에 바구니를 단 것도 여기 사람들 영향을 많이 받았다. 심지어는 자전거에 다는 유모차까지 있다. 어딜가든 길가에 자전거가 세워져 있고, 역 같은 곳에는 자전거 주차장도 크게 마련되 있다.
    우리나라도 자전거 정책을 펼치려면 이 곳을 많이 본받아야 할 것 같다.

    역시 사람들은 인종이나 국가에 차이가 있는게 아니라 사람 개개인의 차이라는 것도 느꼈다.
    그리스나 이탈리아에도 친절한 사람이 있고 퉁명스러운 사람이 있었 듯이, 여기 독일에도 정말 무뚝뚝한 사람도 있고 친근한 사람들이 있다.
    근데 전체적인 느낌으로는 이탈리아보다는 그리스나 독일이 훨씬 사람들이 좋다. 친절을 베푸는 사람들도 더 많다. 지도를 보고 있으면 먼저 다가와서 도와주기도 했다.
    그리고 여기 독일은 에티켓이 정말 좋아서 교차로에서 사람이나 자전거에게 차가 무조건 양보한다. 신경질 내거나 빵빵거리는 건 절대 없다. 둘이 서로 멈추더라도 먼저 가라고 웃음이나 손짓을 보낸다.
    출입문을 통과하다가도 뒷사람이 멀리서 오는게 보이면 우리나라 어느 선전에서 처럼 문을 놓지 않고 잡고 있다.
    우리가 별로 신경 안쓰는 걸 이 사람들은 많이 남을 배려한다는 느낌이 들었다. 이런게 선진문화가 아닐까?

    뮌헨 같은 도시에서 살면 참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하지만 나도 내가 살고 있는 광주에 자부심을 가져야지.
    내가 아무 생각없이 구보하는 어린이 대공원이나 비엔날레, 시내 금남로, 무등산. 다 외지 사람이 보면 부러워 할 수 있는 것들이니까.

     
  • ukits 2004/09/21 05:01 AM 고유주소 | 댓글달기  

    12. 뮌헨 가는 길 – 독일 할아버지들과 만나다. 

    diary – 12. to Munchen

    2004년 09월 16일 목 11:52 베로나가는 기차.

    전날 베네치아 텐트촌에서 많이 쉬어서인지 밤에 잠을 설쳤다. 날씨 탓도 있었다. 새벽 4시 경에 후두둑 후두둑 하는 빗소리가 나를 깨웠기 때문이다. 젠장! 나무에 묶어놓은 자전거를 컨테이너 안으로 들여놓고 다시 잠들었다. 내일은 날씨가 맑다기에 강행군 하지 않고 기다린 건데 비가 그치지 않으면 하루를 쉰 의미가 없잖아.

    아침에 일어나니 안타깝게도 비가 쏟아지고 있었다. 그래도 더 이상 쉴 수는 없다. 캠핑장을 체크아웃하고, 비닐 비옷을 사서 입었다. 자전거를 타고 어떤 목적지까지 가는 거라면 그 목적지 숙소에 도착해서 옷은 빨고 몸은 씻어내면 된다. 하지만 기차를 타야되면 사정이 다르다. 옷이 젖으면 안된다. 안그래도 젖은 샌들에서 계속 냄새가 나 다른 사람들한테 미안해 하는 참이다…
    다행인 것은 챙겨간 나이롱 바지가 위력을 발휘했다는 것이다. 한시간 넘게 비를 많이 맞아 젖었는데도 역에 도착해서 시간표를 확인하고 있자니 금방 말라버렸다.
    머피의 법칙인가… 역에 도착하니 날씨가 좋아져 햇빛이 나고 있었다. –;

    기차에 탑승!
    시간표에는 베로나라는 곳에서 한번만 갈아타면 뮌헨까지 갈 수 있다고 나와 있었다. 기차는 달리고 달려 내가 달려 왔던 길을 되돌아 간다. 엇그제 내가 두시간넘게 걸린 길(Padova까지)을 10분 만에 주파해버린다… 할 말이 없다.

    드디어 이탈리아를 벗어나는 구나. 항구도시 바리에 배로 도착한지 13일만이다. 이탈리아여 안녕~ 차우차우!

    동년 동월 동일 20:56
    뮈닉가는 기차 안.
    (할아버지들의 발음이 뮈닉이었다)

    기차를 네번 갈아탔다. –;
    베네치아를 출발해 베로나에서 내렸다. 뮌헨가는 기차를 바로 갈아 타려고 보니 하필이면 자전거 칸이 없는 열차였다. 원래 국경을 가로질러 장거리를 뛰는 기차는 자전거 칸이 대부분 없나보다.
    ‘불행히도 ‘내가 가진 기차 타임테이블에는 자전거 정보는 표시가 안 되있었다. 그러니 모를 수 밖에…

    하지만, ‘다행히도’ 나랑 똑같이 베네치아에서 뮌헨으로 자전거를 가지고 가는 할아버지 두 분을 만났다. 그 분들도 자전거 칸이 없는 걸 알고는 당황하고 있었다. 그래도 현지인이라 지리에 익숙한지 다른 역을 거쳐 뮌헨에 가는 방법을 금방 찾아냈다. 베레네렌인가… 내가 가진 타임테이블에는 나오지도 않은 역이다. 그래서 나는 그 분들을 졸레졸레 따라가게 되었다.

    이탈리아-오스트리아 국경에서 한번 갈아타고(그 베레네레인가 뭔가 하는 곳), 오스트리아-독일 국경에서 다시 한번 갈아탔다.

    오스트리아를 넘어 북쪽을 향하니 대번에 날씨가 추워졌다. 아직까지 한번도 안 입은 긴팔티를 꺼내 입었다. 할아버지들이 여기가 높은 지역이라 그렇다고 한다. 해발 2000미터인가? 뮌헨에 가면 다시 따뜻해질 거라고 했다. 환승을 기다리면서 할아버지들이 맥주도 한 잔 사줬다. 조금은 몸에 온기가 돈다.

    할아버지라고해서 비실비실한 그런 분을 상상하면 안된다. 백발이 성성하지만 눈높이가 나랑 비슷할 정도로 키가 크고, 덩치는 나보다 좋다. 베로나 부터 베네치아까지가 완만한 내르막길이라 자전거로 하이킹을 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라고 했다.

    나이를 먹고 그렇게 레포츠를 즐기는 걸 보면 참 대단하다는 생각이 든다.
    이탈리아에서도 길거리에서 자전거 동호인을 만나면 거짓말 아니라 20% 아저씨이고, 80%는 백발 할아버지다. 건강한 삶이란 바로 이런게 아닐까. 나도 늙어서까지 자전거를 즐겨야지. 그때도 기력이 되려나…

    열차를 여러번 갈아타면서도 함께 다니면서 많은 이야기를 했다. 열차가 지나가는 곳이 어떤 곳인지 설명도 계속 해주었다.

    오스트리아는 그냥 지나오기만 했지만 창밖으로 보이는 풍경이 마치 동화에나 나오는 것 처럼 보였다. 푸른 산언덕에 짙부른 침엽수들과 띄엄띄엄 붙어있는 집들.
    그 높은 산들 위로 엄청나게 높은 다리를 만들어 차들이 지나가는 도로를 만들었는데 통행료가 무지 비싸다한다.
    기차 길도 엄청나게 많은 터널을 지나는데, 상당히 돈을 많이 들였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

    할아버지들은 뮌헨에서 다시 자신들의 시골 마을로 더 가야한다고 했다. 헤어지기 전에 내가 한국엽서에 내 이름과 주소를 적고 to young grandfather 라고 적어서 건네주었더니. 고맙다고 웃는다. 진짜 할아버지 같지가 않았거든…
    한 할아버지가 자기 명함을 주면서 뮌헨에서 프랑크프루트로 가는 길에 자기 마을이 있으니 꼭 들리라고 가는 길을 자세히 알려 주었다.
    할아버지 마을은 원래 내가 버스로 갈지 자전거로 갈지 고민하고 있는 로만틱 가도 인근에 있었다. 이제 버스로 갈 필요가 없어졌군. 자전거로 지나면서 할아버지 집에 들려야지.
    뮌헨 다음 일정으로 할아버지 마을이다.

    뮌헨 역에 도착해서 GPS로 유스호스텔을 찾았다. 독일말로는 유겐트 헤르베르게라고 한다. 이 곳이 독일에서 가장 큰 호스텔이라는데, 건물도 두개이고 도미토리룸이 한 40명 정도 쓰게 되있다. 헉! (훈련단에서 한 중대가 같이 쓰던 내무실 같다.)
    리셉션에서 일본 여자 두명이 나를 보고는 대뜸 일본어로 뭐라뭐라 물어본다. 내가 일본놈처럼 생겼나 보다. 물어보니 그렇단다. 왠지 반갑지는 않은데?
    나눠주는 침대 시트도 안 받고 들어가려고 하는 등 실수 연발이다. 으이그…

    도미토리 룸에 올라갔더니 짱꼴라 두명이 있었다. 다른 여행자들에게 들은 말로는 짱꼴라 중 일부 돈 많은 놈들 자식들이 해외로 많이 돌아다닌다는데, 일반 배낭여행하는 사람 처럼 보이지 않고 앞서 말한 그런 부류같이 보였다. 왠지 정이 안간다…

    그러고 보니 낮에 빅맥 한 개를 먹은 후로 아무 것도 안먹었구나. 나가서 먹을게 없나 찾아 보았다. 늦은 시간이지만 맥도날드가 문을 열었다. 하는 수 없이 또 빅맥을 먹었다. –; 한국에서도 맥도날드는 한 번인가 두 번밖에 안가본 나에게, 미디엄 or 맥시라고 물어보면 내가 어떻게 아냐고! 그냥 맥시라고 했다.

    광장 밴치에 앉아 식사를 했다. 저녁 때가 지난 시간이라 그런지 거리가 조용하다.
    이탈리아 바리에서 만난 자전거 투어 사람들하고 기차에서 만난 할아버지들 때문에 독일의 첫인상은 참 좋았다. 막상 도착해서는 별로 안좋다. 유스호스텔의 분위기도 그렇고 거리의 풍경도 낮설기만 하다. 이탈리아처럼 며칠 지나면 괜찮아질까?

    하루종일 기차에 가만히 앉아있기만 했는데도 피곤하다. 기차 안에서 졸리는걸 밤에 잠 안올까봐 참았더니 잠이 몰려온다.

     
  • ukits 2004/09/21 05:00 AM 고유주소 | 댓글달기  

    11. 오스트리아 

    diary – 11. Austria

    오스트리아의 수도 빈은 음악으 도시여서 나랑 안친하므로 패스!

    하지만 이탈리아 베네치아에서 독일 뮌헨으로 넘어올 때 오스트리아를 지나서 왔는데, 자연 경관이 끝내주게 아름다웠다.

    바닥은 꼭 누가 손 본 것 처럼 전부 파란 잔디가 깔려있고, 그것보다 조금 짙은 녹색의 침엽수들이 산을따라 자리잡고 있다. 산 위로 안개가 쌓여있고, 산과 산 사이에 다리로 만들어진 높은 차도는 밑에서 보는 사람을 아찔하게 만든다.

     
  • ukits 2004/09/21 05:00 AM 고유주소 | 댓글달기  

    10. 베네치아 

    diary – 10. Venice

    아침에 일어났는데 몸이 또 더 누워있기를 갈망한다. 추스리고 일어나 아침으로 캠프장 슈퍼에서 파스타 캔을 사다 먹고 앞으로의 계획을 세웠다. 만두처럼 밀가루 안에 고기가 든 파스타가 토마토 소스에 요리되서 들어 있었는데 데우지 않아도 먹을 만 했다.

    점심을 먹고 베네치아 안으로 들어가는 버스를 탔다.

    베네치아는 입구까지만 버스가 있고, 도시 내에서는 운하를 통해 배로만 이동할 수 있다. 도시를 여러갈레로 가로지르는 운하에는 베포라토 라는 버스 배부터 택시 배, 관광용 곤돌라가 지나다닌다. 신기한 도시다…
    하루종일 베네치아행 버스와 페리, 베포라토를 이용할 수 있는 티켓이 10.50??. 이걸 구입했다.

    베네치아 산타루치아 역에서 내일 빠져나갈 기차편을 알아보았다. 항상 자전거가 문제다. 뮌헨 직행 기차는 자전거를 싣지 못한다. 다른 곳을 경유하면서 자전거를 실을 수 있는 기차는 자주 있는 편이라 그것을 타고 내일 오전 중에 독일 뮌헨으로 이동하기로 했다.

    베포라토를 타고 산 마르코 광장으로 향했다. 여기서 리도 섬으로 갈 수 있는 페리가 있다.
    광장에는 무척이나 비둘기도 많고, 그만큼 사람도 많았다.

    인근 식당에서 오믈렛을 시켰는데, 피자치즈에 햄이 든 주먹만한 계란말이가 나왔다. 한국의 오므라이스를 생각한 나는 성질이 날라했다. 다행히 다른 곳과 달리 요금에 자리세나 봉사료가 안붙었다.

    리도 섬으로 가는 페리에서는 음악을 듣다가 꾸벅꾸벅 졸았다. 졸 수 있다는게 얼마나 행복한지…
    리도 섬은 길쭉하게 생겼는데 선착장 반대편 해안이 해수욕장이다. 해수욕장에 도착했을 때는 비가 한방울씩 내리고 해가 구름에 가려서 수영을 할 수는 없었다.
    그래도, 카프리 해안, 니스 해안, 리도섬 해안에서 수영해보는게 작은 목표 중 하나였는데…
    시설은 잘 되어 있었다. 베니스 영화제가 열리는 섬이라나?

    베네치아로 돌아오니 비가 쏟아졌다. 금방 그칠 줄 알고 맞고 돌아다니는데 점점 빗줄기가 세졌다.
    비를 맞으며 운하를 가로 지르는 리알토 다리를 지나 로마 광장에 있는 버스 정류장 까지 베네치아 시내 건물들의 좁은 골목길을 아이쇼핑도 하고 그렇게 비를 맞으며 갔다.
    바리의 Torre a mare 에서 파도에 휩쓸려 가버린 랜즈 캡을 이곳에서 샀다. 6??

    비가 와서인지 버스로 베네치아를 빠져나가는 인파가 장난이 아니다.
    버스에 타긴 탔으나 잘 알지도 못하는 타지에서 차창이 김이 서려 어딘지 알아볼 수 없기에, 옆에 사람에게 캠핑장에서 내릴 수 있게 도와달라고 부탁했다. 다행히 물어본 다음 정거장이라 지나치지 않고 내릴 수 있었다.
    나폴리가 나에게 나쁜 인상을 많이 심어줘 이탈리아 전체에 기분이 상했지만, 다른 도시를 거치면서 신용을 회복하고 있다. 좋은 사람들도 많다.

    캠핑장 마켓에서 음료랑 빵을 사면서 내일 날씨를 물어보니 내일도 비가 올것 같단다.
    캠핑장을 떠난다 해도 자전거를 타고 상당 거리를 달려 기차역으로 가야 뮌휜에 갈 수 있는데, 비가 계속 오거나 비가 멈춰도 길이 마르지 않으면 자전거로 갈 수가 없다.
    차라리 마음 편하게 쉰다 생각하고 값싼 여기 캠핑장에 하루 더 머물까 생각해 본다. 그냥 아무것도 않고 가만히 누워서…

    2004년 09월 15일 수 23:26 D+14

    어제 밤 비가 장난이 아니게 왔다. 천둥 번개가 치고, 숙소에 전기가 나갔다 들어왔다 했다.

    여전히 일찍 일어났지만, 오늘은 일정이 없기에 좀더 누워있었다.

    일어나 밖에 나가니 밖은 온통 나뭇잎이 휘날려있고, 내 자전거는 비를 너무 맞아 체인이 녹슬어 버렸다. 물기를 닦아주고 체인에 기름칠을 하였다.

    그제 널어놓은 빨래가 마르질 않는다. 전체적으로 끕끕한 분위기에서 오전에 신변정리를 하고 낮잠을 즐겼다.
    신변정리는 군대에서 쓰던 표현인데, 이럴 때 참 적당한 표현이라는 생각이 든다.
    특별히 할게 없을 때, 니 주변에 있는거 정리해라…

    하루를 쉬면서 보내니 무리한 근육들도 안정을 취하는 듯 하다. 다른데는 몰라도 내 허벅지 근육은 정말 쫄깃쫄깃할 것 같다는 생각을 해본다.

    빨래를 말리면서 전체적으로 남은 일정을 재구성해 보았다. 가려고 했던 도시들을 많이 제거하자 대충 윤곽이 떠오른다. 일정도 처음 잡았던 두달에서 거의 절반을 줄인 한달에 끝낼 수 있을 것 같다.
    유럽에 오기 전에도 지금까지 한 여행들은 대부분 계획보다 빨리 끝났다. 제주도에서도 그랬고. 어쨌든 이번에도 거의 절반을 잘라먹고 한달만에 돌아가게 생겼다. –; 그래도 얼른 그 날이 왔으면 좋겠다. 집이 최고다!!!

    남은 일정은 독일 뮌헨 – 프랑크푸르트 – 네덜란드 암스테르담 – 프랑스 파리 – 니스 – 모나코 – 니스 – 파리 – 벨기에 브뤼셀 – 파리 – 영국 런던 이다.

    모처럼 쉬는 날인데 캠핑장 전화기가 고장나 전화를 못해 아쉽다.

     
  • ukits 2004/09/21 04:59 AM 고유주소 | 댓글달기  

    09. 베네치아 가는 길 

    diary – 9. To Venice

    이제 아침, 저녁으로 날씨가 쌀쌀하다.
    피렌체를 출발한 건 D+10일인 12일 저녁, 민박집을 나서며 케밥으로 저녁을 때우고 바나나와 배, 복숭아를 챙겨 베네치아로 떠났다. 바나나를 비롯한 과일이 스테미너에 짱이다.
    그리스 파트라스 민박집에서 자전거 라이트를 한참 켜놓은 적이 있는데 건전지를 사서 갈아끼워도 안되는걸 보니 과열로 전구가 나간 것 같다.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지만 이게 얼마나 엄청난 결과를 초래할지 날이 밝을 당시에는 알지 못했다.

    베네치아는 피렌체 북동쪽에 있어 이탈리아를 횡단해야 한다. 거기에 산이 있을 거란 걸 대충은 짐작하고 있었지만 어느 정도인지는 감을 잡을 수 없었다. 지도에도 고도는 나와있지 않고, 사람들도 잘 몰랐다.
    정작 피렌체를 벗어나는 곳 부터 산기슭, 오르막이었다. 처음엔 버스도 다니고 마을도 꽤 보이니 어느정도 마음이 놓였다. 두메산골은 아니구나.
    땀을 뻘뻘 흘리면서 올라갔다. 올라가면서 마신 물 보다 땀으로 나온게 더 많을 거다. 간혹 내리막이 있지만 잠깐이고 끝이 없는 오르막길이다. 자전거 기어는 가장 낮게 해도 힘들고, 평균 속도 7-8 km/h가 나왔다. (평지에서는 18-22km/h 가 나온다) 처음엔 금방 내리막이 나올 줄 알았다.
    그런데, 이 망할 오르막은 끝날 줄을 모르고 5시간, 그러니까 자정에 내가 노숙을 결심할 때 까지 계속 되었다.

    5시간여 동안 산을 타니 주변이 어두워졌다. 그런데 가끔가다 나오는 마을 앞 도로가 아니면 가로등이 없어 거의 앞이 보이지 않았다. 때마침 달도 그믐이다. 염병헐! 옛날 과거 보러 가는 선비가 이랬을까? 고장난 후랫쉬를 만져봐도 소용이 없었다. 다행히 형광으로 빛나는 15cm 정도 되는 안전등을 가지고 있었는데 그걸 사용하더라도 10m 앞이 보이지가 않았다.
    그 공포를 아는가? 얼마나 계속 될지도 모르는 길이 거의 보이지도 않고 뭐가 튀어나올것 처럼 주변 숲은 부시럭 거린다. 가끔 차가 지나가면서 주변을 밝혀주면 그것에 의지해 산을 오르는데, 시간이 지날 수록 지나가는 차도 뜸해졌다. 이제와 내려갈 수도 없는 노릇이고…

    내가 다른 사람에게 해주던 말이 생각났다.
    “피할 수 없는 고통이라면 차라리 즐겨라, 나를 죽이지 못하는 고통은 나를 강하게 만든다.”
    웃음이 났다. 죽지만 않으면 강해진다! 힘도 났다.
    도중에 반대방향으로 내려가던 오토바이 여행자들이 물을 건네 주었다. 이번에도 그들이 먼저 손을 내밀어 준 것이다. 조금 먹고 돌려 주자 다 먹으라고 넘겨준다. 물은 충분히 있었지만 어찌나 고마운지…

    자정을 갓 넘기고 산정상으로 보이는 마을 Firenzoula에 도착했다. 간판에 대충 그렇게 그려져 있었다.
    이제 내리막이다! 막상 기다리던 내리막에 도착했지만 오르막보다 더 난감한 문제가 발생했다. 빨라지는 속도에 주변이 어두우니 멀리 볼 수 없어 더 위험하고 밤바람에 식은 땀이 매우 차갑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도중에 츄리닝을 빼서 입었는데도 자전거의 속도에 바람이 옷속을 파고든다.
    그러다 다시 한번 오르막을 만났는데 힘을 쓸 수가 없었다. 또 이 오르막은 언제까지 계속 될까…

    노숙을 결심했다. 밤새 달릴 걸 예상하고 낮에 민박집에서 자고 나오긴 했지만 이상태로 가다간 난간을 보지 못해 커브길에서 도로 밖으로 구르거나 체온이 떨어져 얼어죽는다.
    한 마을의 주차장 공터에 판쵸우의를 깔고 침낭 속에 들어갔다.
    사방은 고요하고 가끔 차소리가 공기를 가른다. 밤하늘에 별이 이렇게 많았던가… 이제까지 보지못한 광경이었다. 침낭 밖으로 나온 얼굴을 찬 바람이 때렸다. 눈을 잠시 부쳤다. 두어시간 잠을 잤나? 추위에 눈을 떴다. 체온으로 유지되던 얇은 침낭 속의 온도가 차가운 새벽 공기를 이기지 못하고 떨어지기 시작한 것이다. 30분을 발광을 했는데 도저히 견딜 수가 없었다. 일어나 마을 어디에 바람을 피할 곳이 없는지 돌아다녀보았지만 헛수고 였다.

    이불을 훔치자!
    그 마을의 빨래줄에서 얇은 침대보를 훔쳤다. 그 집 아줌마에게는 정말 죄송하다. 장발장이 빵을 훔친 마음을 이해할 수 있었다. 덜 마른 것이었지만 침낭 안에 넣으면 오히려 습기 때문에 더 따뜻할 것 같았다.
    이불을 훔쳤으니 그 마을에서 잘 수 는 없고, 조금 더 나아가 다음 마을에서 자기로 했다. 이불을 들쳐매고 자기 좋은 곳을 찾아 마을 3개 정도를 지났는데, 정말 운이 좋게도 울타리가 없는 폐가를 찾았다.
    안에 들어가니 더러운 매트리스도 있었다. 이런 행운이 있나!
    매트리스에 판쵸우의를 깔고 침낭을 얹으니 별5개 호텔이 부럽지 않다. 쌕을 머리에 베고 침낭을 뒤집어 쓰니 앞은 틔여 있지만 바람이 안 불어서 정말 따뜻했다. 귀신 나올 것 같은 집에서 그렇게 다시 달콤한 잠에 빠졌다.

    햇빛이 나고 차들이 쌩쌩 달리는 소리에 눈을 떴다. 노숙은 그래도 성공적이다.
    침낭과 판쵸우의를 개고 츄리닝도 벗고, 다시 레이싱 모드에 들어갔다.
    산을 다 넘었는지 가끔 오르막이 있고, 완만한 내리막이 계속 되었다. 올라갈 때는 그렇게 가파르더니 내려갈 때는 완만하네…
    중간에 바나나와 우유로 연료 보급! 내리막길은 Bologna 라는 도시에서 끝났다. 신기하게도 거기서부터는 줄곳 평지였다. 하지만 베네치아 까지는 아직도 많이 남아 있었고 마음이 흔들렸다.
    그냥 여기서 기차를 타고 베네치아로 들어 갈까? 그러려면 아예 피렌체에서 타고 오지 뭐하러 산을 넘었나. (유레일 플렉시 패스는 날짜로 계산 되니까, 역 하나를 지나든 유럽을 횡단하든 하루 안이라면 똑같다) 괜히 오기가 생겼다. 베네치아까지만 자전거를 타고 다음 번엔 전부 기차로 가는 한이 있어도 베네치아 까지는 간다!
    욕심도 생겼다. 오늘 안에 도착한다. 그렇지 못하면 또 다시 폐가를 찾아 노숙을 하거나 비싼 값을 주고 잠을 자야 한다.

    진짜 열심히 굴렸다. 보통 하루 중 처음엔 평균 시속 22km/h가 나오고 중반 이후엔 체력이 떨어져 18km/h가 나오는게 보통의 내 페이스인데, 끊임없이 바나나와 쿠키로 에너지를 주입하면서 베네치아에 도착할 때 까지 22km/h를 유지했다.
    솜바지도 소용없다. 항문이 파열됐다. 다리보다는 상체를 버틴 팔이 더 아팠다.

    날은 이미 어두워 졌지만 산길이 아니라 가로등이 거의 끊기지 않는다. 다행이다. 베네치아 이정표가 교차로마다 보일 무렵, 참치캔과 고추장으로 마지막 영양 보충을 하며 베니스 호스텔을 가이드 북에서 찾아보니… 문제가 발생했다. 버스는 없고 배만 있는 베니스에서 호스텔이 바포레토라는 버스용 배를 한번 타고 갈 수 있는 섬에 있었다. 이 밤에 바포레토가 다닐리 없잖아! 이런 미네랄… 되는 일이 하나도 없군. 결국 강을 따라 베네치아로 향하면서 폐가를 찾기에 이르렀다. –; 서럽다. 좀 상황이 좋지 않다. 폐가는 다 울타리가 있거나 문이 막혀있고, 도시가 잘 발달되 있어 그나마 쓰지 않는 건물이 많지 않다. 숙박 업소는 많지만 비쌀 것이고.

    그러다가 캠핑장 이정표를 발견했는데 보통의 캠핑장 처럼 캠핑카 + 텐트 그림에 침대 그림도 그려져 있었다. 혹시나 하고 들어가 물어보니 침대 시트 없이 하룻 밤에 12?? 란다! 그래, 난 아무것도 필요 없어. 그냥 바람만 막아 주면 되!
    안내 된 곳은 컨테이너 박스에 침대가 두개 들어가 있는 조그만 방이었다. 침대는 도미토리 형식은 아니고 그냥 일행이면 두개를 쓰고 혼자면 1개를 쓰는 것 같다. 불도 켜지고, 옷걸이도 있고, 콘센트도 있다. 왜 지금까지 캠핑장에 이런 시설이 있다는 걸 몰랐을까? 앞으로 노숙은 자제하고 캠핑장을 애용해야 겠다 생각하면서 짐을 풀고, 공동 샤워실에서 샤워를 하고 자리에 누웠다. 이 시간이 11시 정도 였다.
    샤워하러 갈 때, 야외에서 떠들고 이야기하던 사람들도 각자의 차와 텐트로 들어가 조용하다. 꼬박 하루를 넘게 달려 씻지도 못하고 있다가 이렇게 씻고 침대에 누우니 살것 같다.

    이 날 달린 거리가 218km, 11시간을 자전거 위에 있었다. 그 전날, 피렌체 부터 계산하면 280km, 16시간.
    허리 빼고 목, 팔, 다리, 항문 다 아프다. 허리는 왜 안아프지. 안티푸라민 챙겨가라는 어머니 말씀 안들은게 후회된다. 유럽 약국에도 안티푸라민이 있으려나…

    오늘은 나폴리에서 로마 간 것 보다 훨씬 더 고생해서 그런지 몸은 피곤하지만 기분이 더 좋다.
    도중에 포기하지 않고, 원래 마음 먹은대로 해낸 것이 뿌듯하다. 한편으로는 무식하다는 생각도…
    그래서 앞으로는 현실과 잘 타협할 생각이다. –;

     
  • ukits 2004/09/21 04:59 AM 고유주소 | 댓글달기  

    08. 피사 & 피렌체 

    diary – 8. Pisa & Firenze

    2004년 9월 11일 18:56 피렌체 민박

    여행 시작한 이후로는 매일 꿈을 꿨다. 무슨 꿈인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깨고 나면 꼭 내 방일 것만 같은 느낌이 든다.
    오늘도 로마에서 꿈을 꾸고 6시경에 일찍 눈이 떠졌는데 다시 누워서 뒤척였다. 하루가 시작되는게 두렵다. 솔직히!

    엇그제 로마에 도착했을 때 민박집 이모님이 특별히 먹고 싶은 거 있으면 말하라고 했었다. 난 육개장이 무지 먹고 싶어서 해주실 수 있냐고 지나가듯 말했었는데, 오늘 아침 메뉴가 육개장이었다. 돈을 떠나서 정말 가족처럼 잘 대해줘서 정말 고맙다. 미역국은 아니었지만 두 그릇을 뚝딱 해치웠다.
    체크아웃도 따로 없다. 3일치 숙박비를 그냥 건네 드리고, 자전거를 가지러 내려가니 엇저녁에 내려와 정비할 때 채워두었던 앞바퀴에 바람이 다시 빠져 있었다. 젠장헐… 자세히 보니 타이어에 작은 스프링 하나가 박혀 있었다. 펑크가 난 것이다.
    일부러 열차시간에 딱 맞춰 나왔는데 늦겠군…
    일단 대야에 물을 떠오고 타이어 내장을 꺼내 바람을 조금 넣고 물에 집어 넣어 힘을 준다. 그러면 구멍이 뚫린 곳에서 공기방울이 나온다. 펑크 난 곳에 패치를 붙였다. 조립 후 확인하니 다행히 바람이 다시 빠지진 않는다.
    얼른 역으로 갔더니 다행히 피사행 열차가 출발 직전이었다.

    아직 이탈리아 밖에 보지 못했지만 이쪽(유럽)은 기차가 매우 활성화 되어있다. 도시는 작고 땅덩어리가 커서 그런 듯하다. 어쨌든 자전거 칸에 자전거를 실으면서 시모네Simone를 만났다. 먼저 나에게 자전거를 같이 묶겠느냐고 물어보았다. 객실 칸에 와서도 이야기를 나눴는데, 피사에 있는 여자 친구를 보러 주말마다 자전거를 가지고 피사에 간다고 했다. You’re good boy friend! 한국에도 가본 적이 있고 서툴은 영어지만 먼저 말을 걸어주는 오픈 마인드를 가지고 있었다. 보통의 현지인들은 외국인하고 오래 이야기 하는걸 싫어하는데…
    어찌된 영문인지 자전거 칸 바로 앞 객실이 폐쇠되 자리를 옮겨야 할 때도 이탈리아어를 듣고 서투른 영어로 내게 말해주었다.

    피사에 도착하니 시모네가 쪽지를 한 장 건네며 메일 주소란다. 처음으로 현지인 친구를 사귀게 되는 순간이었다. 무척 반가웠지만 한편으로는 먼저 다가가지 못한게 왠지 모르게 부끄러웠다. 난 항상 뭔가 받아주는 입장에 서 있어야 하는가.
    시모네가 피사의 탑 까지 자전거로 안내 해주고 갔다. 정말 감동 받았다.

    피사는 피사의 탑 밖에 볼것이 없다. 다른 로마 유물과 달리 피사의 탑은 원래 생각했던 것 보다 거대했다.
    시간이 갈 수록 조금씩 더 기울어져서 보수공사를 했다고 한다. 똑바로 세울 수 있는 기술을 가지고 있는데도 관광의 목적인지 비뚤어지게 놔뒀다고 한다.

    피사에서는 탑 기대고 찍기가 유행(?)인데, 운 좋게 한국인 관광객을 만나 혼자서는 찍기 어려운 ‘피사의 탑 받치기’ 사진을 시도해 볼 수 있었다. 흔히들 손을 받치고 찍는데 난 최성국 스타일로 도전해 보았다. 혼자 다니니까 이런게 않 좋군…

    다시 역으로 돌아와 피렌체행 열차를 탔다. 붐비는 코스는 아니라 모처럼만에 음악을 들으며 한가하게 한 시간을 보냈다.
    검표시간에 내 자전거를 보더니 자전거 표를 보여 달랬다. 자전거 칸에 실으려면 24시간용 자전거 티켓을 3.5?歷? 주고 사야 되는 것이었다. 차내에서는 벌금 5?? 포함 8.5?歷? 내야한다. 아까워라… 순전히 몰라서 그랬다구!

    오후 아직 해가 지지 않았을 무렵, 피렌체에 도착했다. 또 한 도시를 정복했다! 가장 가까이에 있는 민박집을 찼아갔다. 이제 거리 이름으로 주소를 찾아가는데 조금은 익숙해졌다. 로마도 그렇더니 피렌체도 한인 민박은 중국인 거리나 흑인 거리에 인접해있다.
    자전거를 주차하고 처음 들어갔을 때는 다른 여행자가 아무도 없더니 저녁 먹을 시간이 되자 많은 사람들이 돌아왔다.
    저녁 메뉴는 삼겹살이다! 약간은 푸석푸석한 양배추에 싸먹었는데, 입으로 들어가는지 코로 들어가는지 몰랐다. 내일은 힘이 솓겠는 걸?

    저녁을 먹은 후 피렌체의 야경을 즐기러 자전거를 타고 나섰다.
    우피치 미술관 인근 거리의 바이올린 악사. 그 옆으로는 베르니 탄생 150주년 연주회 연주자들이 지나가면서 대조를 이룬다. 저 거리의 연주자가 더 실력이 좋을지도…

    단테와 베아뜨리체의 다리에선 플룻을 부는 할아버지 악사를 만나 잠시 멈춰 한 곡을 들었다. 왠지 모르게 구슬퍼진다. 동전을 못줄망정 훌륭한 연주에 박수라도 쳐 줘야지. 하지만 박수를 치는 사람은 나 하나 뿐이었고 할아버지는 나를 보고 눈을 찡긋 했다.
    이쪽 사람들은 내가 좋아하는 위트라고 해야 할까 그런 것들을 가지고 있다. 그리스에서 횡단보도에 파란불이 켜졌는데, 승용차가 그냥 지나가 버리자 기다리던 청년이 박수를 치면서 ‘Wonderful. wonderful~’ 했던거나, 버스 문이 닫히고 뛰어온 아저씨가 문을 두드려도 안열어주자 떠나는 차에 대고 박수를 치고는 엄지 손가락을 힘껏 치켜드는 거랄지, 교차로에서 더 느린 내 자전거를 기다려주며 고개짓으로 끄덕여 줄 때, 나도 모르게 기분이 좋아진다.

    내가 존경하기로 한 미켈란젤로의 이름이 붙은 언덕에 올라 피렌체의 야경을 감상하고 다시 우피치 미술관 앞에 오니 아까 말한 베르디 150주년 기념 오케스트라 연주가 시작되었다.
    거리의 악사들과는 또다은 감동이 느껴진다.
    두 곡을 듣고 일어서 민박에 돌아오니 다른 여행자들이 식탁에 모여 맛이 유명하다는 토스카나 와인을 마시며 이야기하고 있었다.
    나도 맛좀 보자며 끼어든 자리가 새벽 두 시 까지 이어질 줄이야…
    와인이 떨어지자 맥주를 사와서 먹고, 또 밖으로 한잔하러 나갔다가 살인적인 술 가격에 숙소로 돌아와 맥주를 좀 더 마셨다.

    세상을 멋지게 사시는 분들이 많다.
    명품을 사서 일본에 공수해 주는 에이전트 형.
    건축학회에 참가했다가 휴가겸 여행하는 박학다식한 형.
    매일 싸운다지만 그래도 부러워 보이는 커플.
    KBS ‘세상의 아침’ 작가 누나.
    독일교포 2세로 독일어, 영어, 한국어-3개국어를 구사하는 여.
    여행 중 하루 25?? 사용의 신화, 공학도이면서 애니메이션 시나리오도 쓰는 여,
    그리고, 그들에게 무식하고 쌈잘하게 보인 해병대 아저씨.
    인디안, 축구선수 최태영, 양현석. 오늘 내가 닮았다는 소리 들은 사람 목록이다. 아마도 내 얼굴이 고글 부분만 안타고 다른 부분이 타서 많이 다르게 보이나 보다.

    정말 좋은 기회로 이런 사람들을 만나게되어 많은 걸 느꼈다. 다들 자기 할 일을 묵묵히 하지만 대단하게 해내고 있구나.

    즐거운 시간을 갖고 침대에 누웠지만 이미 늦은 밤이라 피곤하다… 내일은 약간 패턴이 바뀌어서 오후에 자고 저녁에 피렌체를 뜨는 계획이다.

    9월 14일 저녁 베네치아 캠핑장에서

    (밀렸던 걸 시간 여유가 있어 한꺼번에 쓴다)
    아침 7시 30분 경에 일어났다. 몹시 잠이 쏟아졌지만 오늘 계획대로 진행하려면 지금 일어나야 한다.
    오전에 일찍 가서 줄을 서야 볼 수 있는 우피치 미술관을 보고, 오후에는 민박에서 잠으로 체력을 보충한 다음, 해가 지고 시원할 때에 베네치아를 향해 자전거를 굴린다는 계획이었다.
    나중에야 하는 말이지만, 결국 성공은 했다. 그런데 이보다 멍청한 짓은 없었다.

    어제의 민박집 멤버 중, 나를 포함 3명이 우피치 미술관으로 향했다. 좀 늦었나 싶었는데 다행히 30분 정도 밖에 기다리지 않았다.

    피렌체는 르네상스 운동의 발화점이고 그 중심이 되는 사람들이 메디치 가문 사람들인데, 이 사람들이 약을 만들어 팔아먹고 돈이 주체할 수 없을 만큼 많아지자 예술가들을 후원하고, 작품들을 사모으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르네상스 시대가 오게된 것이었다.
    우피치 미술관은 메디치 가문이 그 시절 부터 모은 작품들이 있는 곳이고, 메디치 가문의 마지막 딸이 시집가면서 피렌체에 기증했단다. 대단하다…

    미술관의 규모도 커서 오전을 거의 할애하고 점심 때가 되어서야 빠져나왔다.
    미켈란젤로의 무덤이 있다는 산타크로체 성당에 들렸다가, 숙소로 돌아오는 도중 미켈란젤로 생가도 보았는데 입장료가 있어서 들어가 보진 않았다.
    나도 어제 식빵과 잼으로만 하루를 버틴다는 여자분을 보고 느낀바가 있다. 그렇게는 못하지만 최대한 아껴야지.

    민박집에 돌아와 바로 떠날 수 있게 준비를 해놓고 잠이 들었다. 일어나 보니 잠깐 비가 왔더란다. 비가 오면 나는 발이 묶인다. 자전거를 분해하더라도 짐이 커지니까 이동하기가 불편하다.
    다행히 갠 날씨덕에 약간은 어두운 하늘을 뒤로 하고 피렌체를 떠났다.

     
  • ukits 2004/09/21 04:58 AM 고유주소 | 댓글달기  

    07. 바티칸 

    diary – 7. Citta del Vaticani

    2004년 09월 10일 22:00 로마 숙소

    오늘은 보고 들은게 너무 많아 기록할 게 정말 많다.

    바티칸은 천주교의 총본산으로 교황이 머무르는 곳이기도 하다. 보통 바티칸과 성베드로 성당, 성베드로 광장을 바티칸으로 보는데, 공식적으로 국가로 인정받은 것은 100년도 안된다. 무솔리니가 자신의 정권을 인정 받기 위해 바티칸을 뒷 돈과 함께 정식 국가로 독립시킨것이라 한다. 그래서, 화폐나 우표도 따로 발행하고 전화 코드도 다르다.

    바티칸에 유명한 볼거리들이 많은 이유는 종교라는 명목으로 각종 예술가들을 끌어들여 예술 작품을 직접 제작케하기도 하고, 또 세계 각지의 유물들을 컬렉션하여 모아왔기 때문이다.
    오늘 가이드를 맡으신 분도 말씀하셨지만, 종교는 그저 종교로써 욕심을 버리고 본분에 충실해야지 이러한 큰 재산을 축적하고 화려함으로 장식한다는 것은 도가 지나치다는 생각이다. 어쨌든 로마 시대에는 종교가 생활과 밀접한 관련이 있었고 그렇기 때문에 정치와 미술, 음악 등의 다른 분야에도 많은 영향을 끼쳤다.
    그런 욕심 많은 바티칸의 권위 덕분에 오늘 나는 한자리에서 수 많은 것을 보고 느낄 수 있었다.

    로마 테르미니 역에서 한국인 여남은 명이 모여 지하철을 타고 바티칸으로 가이드 투어를 떠났다. 이른 시간인데도 바티칸에 들어가려는 사람들이 벌써부터 줄을 서서 기다리고 있었다. 공항에서처럼 금속 탐지기 검사를 한다.

    바티칸의 최고 볼거리라면 시스티나 예배당에 미켈란젤로가 그린 천정화 천지창조와 벽화 최후의 심판인데, 정작 예배당 안에서는 사람들의 웅성거리는 소리에도 그림이 상할 우려가 있기 때문에 말을 하지 못하게 한다. 그래서 야외에서 삽화를 보고 설명을 다 한 후 들어가서는 구경만 한다.

    오전에는 가이드의 로마 역사와 종교 이야기를 정말 재미있게 들었다. 내가 왜 진작 세계사에 관심을 가지지 않았을 까 하는 후회가 들었다. 중고등학교 역사 시간에 배우는 세계사는 단지 따분한 외울 거리에 불과 했는데, 현장에서 듣는 말 한마디 한마디가 정말 생생하게 느껴졌다. 정말 역사 이야기를 하려면 끝이 없고 다 기억하지도 못하니 넘어가야지. ^^

    바티칸 관광은 나에게는 크나큰 충격이었다.
    우선은 동시대를 살아았던 3대 거장이자 천재인 레오나르도 다 빈치, 미켈란젤로, 라파엘로의 관계와 그들의 이야기를 자세히 알게 되었다. 천문학, 수학, 건축, 조각, 그림, 문학 거의 못하는게 없는 천재들. 세상이 약간 불공평하다고도 생각해본다. ^^ 앞으로 이들에게 더 관심을 가져 보려한다.
    나 같이 성질급한 사람은 상상할 수도 없는 오랜시간에 걸쳐 만들어진 그림과 조각, 대리석 모자이크, 건물들… 판테온 같은 건물은 현대의 기술로도 건축이 불가능하다고 한다. 또 일생을 바쳐 명작을 만들고 그려낸 미켈란젤로에게 존경심이든다.

    세계사 이야기 중 면죄부 판매에 대한 이야기를 아는지? 그 면죄부를 판 이유가 성베드로 성당을 짓는 돈이 모자라서 였다고 한다.
    세계에서 가장 큰 성당으로 성당 바닥에는 다른 나라 성당의 크기가 세겨져 있다.
    나중에는 대리석 같은 재료가 모자라 콜로세움 같은 다른 유적에서 빼다 써서 욕을 먹었다고 한다.

    성베드로 성당은 성당 자체 말고도 정말 볼거리가 많은데,
    25년마다 한번씩 열린다는 구원의 문.
    돌아가신 후 20년 후에 열어 봤는데,

     
  • ukits 2004/09/10 06:45 AM 고유주소 | 댓글달기  

    06. 로마 

    diary – 6. Rome

    2004년 9월 9일 D+8 21:47
    로마 한인 민박

    아침 일찍 눈이 떠지긴 했는데, 일어날 수 가 없다. 어제의 후유증으로 잘 익은 왼쪽 다리는 따끔거리고, 다리가 후들거린다.
    그래도 어떻게 일어나서 아침을 먹고 짐을 정리하고, 오늘 돌아볼 루트를 점검하고 있는데, 민박 주인아저씨께서 오셔서 다른 방 형들과 함께 모아 놓고 지도를 보며 관광명소를 재미있게 설명해 주셨다. 무작정 로마 시내로 나가려 했던 참에 정말 잘된 일이었다.

    그렇게 오전엔 인터넷도 하고 민박에 머물다가 점심 때 잠깐 잠을 자고, 나가려는데 주인아주머니가 점심도 먹고가라고 차려주셨다. 원래 점심은 안주는데… 어찌 감사를 드려야할지.

    가이드 북에서도 그렇고 주인아저씨 말도 그렇고 자전거로 돌아다니는 것은 비추천이라고 해서 일단 걸어나갔는데 막상 돌아다녀 보니 트레비 분수, 나보나 광장 인근만 골목이 좁아 자전거가 좀 힘들고 나머지는 자전거가 오히려 편할 뻔 했다. 덕분에 오늘 하루 무쟈게 걸었지.

    콜로세움 – 콘스탄티누스 개선문 – 카사칼라 목욕탕 – 대전차 경주장 – 마르첼로 극장 – 캄피돌리오 광장 – 베네치아 광장 – 트레비 분수 – 판테온 – 나보나 광장 – 스페인 계단 – 포폴로 광장

    콜로세움, 개선문 그리고 포로 로마노 언덕.
    말로만 듣던 콜로세움을 직접 본 소감은… 글쎄 생각했던 것 보다 작아 실감이 나질 않았다. 물론 생각했던 것 보다 작다는 것이지 엄청 크다. 폼페이의 원형 경기장만 했다.
    이곳들의 유적은 많이 무너지고 훼손되 복원 공사가 한창이고, 이미 현대식 벽돌로 무너진 곳을 보수한 곳도 많았다. 고대의 벽돌들과 현대의 벽돌들이 만나 이상한 역사의 괴리감을 만들어낸다.
    로마의 건물들은 대부분이 지어진지 천년이 넘은 것들이라고 한다. 최근에 지어진 테르미니 역사 같은 게 500년, 100년 이정도…
    나보나 광장 옆의 건물들은 겉은 그렇게 오래되 보이지만 속은 초호화판이라는데…

    콜로세움 바로 옆에는 콘스탄티누스 황제가 전쟁에서 승리 한 것을 기념하기 위해 세운 개선문이 있고, 또 로마가 세워지고 정치/종교의 중심지였던 포르노 마로, 아니 포로 로마노 언덕이 있었다.
    포로 로마노 언덕과 콜로세움 입장료를 합쳐 8?姸嗤? 안들어가기로 했다. 결국 나중에 잘했다고 생각했으니까..

    카사카라 목욕탕
    수 천년 전에 천명 이상이 함께 목욕할 수 있는 공중 목욕탕이 있었다는게 신기했다. 고대의 유적들은, 당시 사회를 사는 사람들에겐 문화이고 생활이었을텐데, 지금 우리의 생활도 수천년 이후 사람들이 느낄때 고대의 유적이라고 생각 할까? 찜질방 유적을 보면서 지금의 나 같은 생각을 할까? 찜질방 유적이라니 우습다.
    벽에 조각들도 매우 화려했다고 하나 지금은 거의 무너져 원래의 형체를 알아보기 힘들 정도 였다. 간간히 바닥의 정교한 타일들과 배수구가 목욕탕이었음을 알려주고 있었다.

    카사칼라 목욕탕과 대전차 경기장 사이에 수박을 파는 노점이 있었는데, 크기는 무등산 수박만 한데 달지는 않다. 마침 목이 마르던 차에 1?歷? 주고 큰 덩이 하나를 사 목을 축였다. 오늘은 한국에서 먹는 음식만 먹는구나… 밥/김치에 수박도…

    대전차 경기장
    영화 벤허에 나왔었다는 대전차 경기장은 그저 이름만 경기장일뿐 지금은 그런 사실을 모른다면 그저 공터라고 생각될 정도로 변해있었다.

    진실의 입은 패스!

    캄피돌리오 광장, 베네치아 광장
    Capital의 어원이라고 하는 이 광장은 미켈란젤로가 설계/시공을 하였는데, 말로만 들었던 사람의 손길이 닿아있는 건축구조물에 서있다고 생각하니 감회가 새롭다. 특히 광장에 올라가는 계단은 위로 올라갈 수록 점점 넓어져서 아래쪽에서 봤을때 계단이 정사각형 모양으로 보이게 (원래 계단은 사다리꼴로 보임) 일부러 설계를 했다고 한다. 하지만 차이를 잘 못느끼겠더군.
    엽서나 가이드북에 나온 것과 같은 구도로 사진을 찍으려 했으나 그 위치는 지금은 들어갈 수 없게 막아놓았다.
    건물 뒤로 돌아가자 돈이 아까워 안들어갔던 포르노 마로 일대가 한눈에 펼쳐졌다. 로마 건축 양식과 보존 상태가 거의 비슷비슷해 이제는 좀 덤덤하다.

    베네치아 광장에는 이탈리아 초대 왕인 엠마누엘레 2세 기념관이 있는데, 이 곳은 아직까지 화로에 불이 타오르고, 무장 현병이 보초를 서고, 사람들이 끊임없이 헌화를 한다고 한다.
    돔 꼭대기에 보면 네 마리의 말이 끄는 마차에 큰 날개가 달린 천사가 타고 있는 상이 있는데, 왠지 모를 위압갑이 느껴졌다.

    트레비 분수, 스페인 계단
    로마의 휴일에 나오는 곳으로 내가 개인적으로 가장 기대하고 있었던 곳이었다. 말로만 듣던 그 곳이구나… 이곳 또한 콜로세움 처럼 내가 가지고 있던 상상과는 엄청 다른 모습을 하고 있었다. 분수 주변에는 영화에서 보던 당시에는 없었을 법한, 아니 있었어도 잘 가렸을 법한 건물들이 주변을 에워 싸고 있고, 다른 관광과 기념품 장사꾼들로 북적였다.
    분수에 동전을 1개 던지면 로마에 돌아오고, 2개 던지면 사랑이 이루어지고, 3개 던지면 아내와 이혼을 한다고 한다. 민박집 주인 아저씨는 올때마다 3개씩 던졌다고 했다. –;
    가방에서 2센트유로 동전을 찾아 분수에 등 뒤로 던져 넣었다. 다시 올 때는 혼자가 아니길 바라면서…
    분수의 물은 깨끗하고 차가웠다.

    스페인 계단 역시 내 환상과는 많이 달랐다. 작고 초라해 보였다. 계단 위쪽은 삼위일체 성당이 있는데 잠시 들어가 안정(?)을 취하고 나와 사진을 찍고, 분수의 물을 마셨다. 물 맛이 마치… 스페인 계단에 환상을 가지고 있는 한국 청년이 실망하고 웃다가 마시는 분수 물의 맛이었다.
    NO PAY, NO PICTURE, OK? 라고 쓴 간판을 든 로마 병정 옷을 입은 사람을 만났는데, 웃음이 절로 나왔다. 다른 사람하고 이야기하고 있을 때 몰래 뒤에 가서 찍었다. ^^

    판테온, 나보나 광장.

    판테온은 로마시대 건축물 중에 보존이 매우 잘 되었는 건물로 거의 회손되지 않았다. 내부는 뭐가 문제인지 공사중이고…
    특이하게도 돔 윗부분은 하늘이 보이는 상태로 구멍이 뚫어져 있는데, 공기의 대류 현상에 의해 비가 와도 안으로 빗방울이 들어오지 않는다고 한다.
    민박 주인 아저씨 말로는 비올 때 가섭 확인해봐도 빗물이 들어온다던데…

    나보나 광장에는 각종 기념품상과 문신 등 잡상인들이 많고, 어떤 아이들이 자기 장난감들을 팔려고 거리에 펼쳐놓은걸 보고 웃음이 번져 사진을 한장 찍었다.
    같은 민박에 묶는 형들을 만났는데, 주인아저씨가 알려주신 2?? 짜리 스페셜 아이스크림을 같이 먹으러 갔다. 7가지 맛에 크림까지… 맛을 느끼기 전에 녹는게 무서워서 재빨리 해치웠다. ㅋㅋ

    포포로 광장
    오래 전부터 여러 갈래의 길이 만나는 곳에 광장이 생기자 19세기에 다시금 광장으로 건축했다고 한다.
    트럼펫 소리가 넒은 광장에 울려퍼진다. 관광지라서 그런지 이런 거리의 예술가들을 많이 볼 수 있다.
    한 가운데는 이집트에서 가져왔다는 오벨리스크가 떡하니 서 있고, 이집트의 이미지와 잘 어울리게, 살아있는 파라오 동상이 서있다. 사람들이 동전을 집어넣으면 고개숙여 인사를 하고, 사진을 찍으러 옆으로 가면 깜짝 놀래주기도 한다. 평소에는 안움직이고 가만히 서 있다. 트레비 분수 앞에는 석고색 살아있는 동상이 있다.
    그 모습이 신기해서 가만히 보고 있으니, 꿈틀꿈틀 하며 전화도 받고, 조금 있으니 일과를 마치는 듯 옷을 벋고 내려와 어디론가 사라진다.
    왜 이집트의 유물이 로마에 와있나? 이것이 정복자들의 특권인가. 언제나 역사엔 정복 당하는 자들과 정복하는 이들이 있고, 스포트라이트는 정복자들에게로 돌아간다. 남을 찍어 누르고 자신이 그 위에 올라가는 것 그게 인류의 본성이 아닌가 싶다. 우리나라도 정복당했던 역사가 많은 민족이라 그런지 이탈리아 보다는 이집트에 더 정이 간다.
    저 오벨리스크가 레이저를 쏘지는 않을까? ^^ (커멘드&퀀커라는 오락에 보면 레이저를 쏘는 무기로 오벨리스크가 나온다)

    이제 집으로 돌아가는 길만 남았다. 거리의 상점들을 구경하며 돌아가다 길을 잃었다. –; GPS 작동! 좀 늦긴 했지만 다행히 제대로 집을 찾아 돌아왔다.
    로마는 나폴리보단 거리 표시가 잘 되어있고, 지도에 거리 이름이 다 표시되어 있어 거의 길을 찾아 갈 수 있을 것 같다.
    우리나라는 이에 비하면 아직 정착이 덜되었지만 언젠가는 이렇게 되리라고 본다.

    너무 많이 걸어 발 앞꿈치가 아프다. 자전거 생각이 간절한데…
    로마도 크기로만 따지자면 광주보다 더 작은 것 같다. 어쨋든 다 걸어서 돌아다녔으니까.
    세계사에 비중을 많이 차지하는 로마 문화의 수천년 역사를 작은 한 점이라도 공유하게 된 것 같아 뿌듯하다.

    다시 말하지만 이탈리아는 볼게 많아서 참지 얼른 떠나고 싶다…

    내일은 돈이 좀 들더라도, 한국인 가이드를 통해 바티칸 투어를 받을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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