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 한국으로…
diary – 21. To Korea
2004년 10월 07일 수
영국에서의 마지막 날이다. 대부분 일정을 마무리 지어놓은 상태라 밖에 나가지 않고 숙소에 머무르기로 했다.
나가면 돈만 쓰지…
공항이 숙소에서 상당히 멀기 때문에 집에서 미리 잠을 자고 체력을 비축한다음 저녁에 출발, 밤새 자전거를 굴려서 공항 로비에서 노숙을 한다는 계획을 짰다.
돌아갈 날이 다가올수록 매사에 의욕이 없어진다. 나만 그러는 건 아니고 여행을 하는 사람들 대부분이 그런다고 하니 걱정할 것은 아닌듯하다.
아침을 먹고 숙소 사람들은 다들 학교에, 업무에, 관광에 숙소를 나서 나 혼자 남게 되었다. 알바도 어제의 아저씨를 모시고 런던 시내 가이드를 떠났다.
오랬만에 런던 하늘에서 해가 비쳤다. 세탁기에서 빨래 꺼내 널었다. 내 파마(PAMA)티가 빨래 중에 있기도 했지만 나 혼자 있으니 소일거리라도 도와야지. 아침에 이미 체크아웃을 한 상태라 오늘 여기 머무르는 것은 주인 누나의 배려라고 할 수 있다.
우킷스닷넷 사이트 구상과 함께 컴퓨터를 이것저것 손을 봐줬다.
혼자 집에 있으려니 쌀쌀하군. 어제 사온 3분 스파게티를 먹고, 잠을 청했다.
얼마나 잤을까. 후두둑 소리에 눈을 떠보니 비가 오고 있었다. 일기예보에서는 오늘 그냥 구름이라고 했는데… 런던의 날씨는 역시 알 수가 없다.
후다닥 빨래를 걷어 주방에 널었다. 거의 다 말랐었을텐데 안타깝다. 내가 민박집 주인이 된 기분이네-.
자전거가 걱정이다. 비오면 자전거 타기가 곤란한데…
다시 잠들어서는 6시가 되어서야 일어났다.
마지막 짐을 꾸렸다. 정리를 하면서 보니 처음 싸왔던 짐 중에 써서 없어진 건 고추장 뿐이고, 늘어난 건 지도와 영수증들이다. 가지고 와서 한번도 안쓴 삼각대와 편광 필터, 없었으면 얼어 죽었을 고마운 침낭,
오랬만에 보는 그리스어 영수증들이 한달 여정을 다시 생각나게 해주었다.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여행이 이제 끝나는구나.
혼자 저녁을 먹으려던 참에 어제의 아저씨들 중 한 분만 먼저 돌아오셨다. 일행이 오면 같이 먹자는 말에 기다렸는데 그 나중에 오신 아저씨가 저녁을 먹고 왔다. –; 하는 수 없이 먼저 와계시던 분과 둘이 라면과 스파게티와 빵과 과일로 나름대로의 진수성찬을 만들어 먹었다. 최후의 만찬? ^^
밤에 떠나려는 내 계획을 듣고 아저씨는 숙박비를 대신 줄테니 여기서 자고 내일 아침 일찍 나가라고 하셨다. 그 마음이 정말 고마웠지만 아침에 허둥지둥 하는 것 보단 일찍 가서 기다리는게 낫다는 판단 하에 집을 나서기로 했다. 더군다나 나는 길 잘 헤메기로 유명하니 변수가 될 것이 분명했다. –;
인사를 드리고 집을 나서는데 아저씨가 지하철이라도 타고 가라고 기어이 10파운드를 쥐어주신다. 허허. 감사합니다.
자전거를 가지고 지하철을 타라니… 그런 사람들도 의외로 많다고 했다.
거리로 봤을 때 예상소요시간 4시간. 4시간 정도의 주행은 이제 세발의 사발이다!
숙소를 나선 시간이 밤 10시 경, 비는 그쳤지만 땅이 젖어있고 바람이 차가웠다. 조금 달리다 보면 몸이 더워져 금방 괜찮아 질꺼다.
런던 히드로 공항은 런던 서쪽 외곽에 있는데 숙소와는 정반대 방향이고 지하철로도 1시간 30분이 걸리는 거리라고 했다. 런던 시내까지는 금방 진입했다. 타워브릿지, 런던아이, 빅벤이 차례로 지나가고 지도를 봐가며 서쪽을 향해 내달렸다. 12시… 제법 멀군? 하지만 이 정도는 이제 나에게 껌이다!
확실히 체력을 더 길러야겠다고 느끼는 것이 몸무게가 쑥 빠져버린 것도 있지만, 다리 근육에서 힘을 내는 무언가가 사라져버린 듯한 느낌이다. 피로해진 상태에서 쉬어도 회복되지 않고 계속 에너지를 소모하니 다른 살에서 그걸 가져가는 것이다. 남들이 들으면 욕하겠지만 난 왜 지방이 없지?
첫번째 히드로 공항 이정표가 보였다 다 왔구나! 신기하게도 공항 내에 까지 자전거로 갈 수 있게 자전거 도로가 나 있었다. 공항에 자전거 타고 오는 나 같은 사람이 얼마나 될까?
새벽 1시 40분경 도착한 공항은 매우 한가했다. 내일 아침 비행기를 타려고 일찍 왔는지 몇몇 승객과 공항 보수공사 직원이 전부다.
집에 전화를 드리고 의자에 앉았다. 10시간을 뭐하고 보내나…
* 이 뒤로는 기록하지 않았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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