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 뮌헨 가는 길 – 독일 할아버지들과 만나다.
diary – 12. to Munchen
2004년 09월 16일 목 11:52 베로나가는 기차.
전날 베네치아 텐트촌에서 많이 쉬어서인지 밤에 잠을 설쳤다. 날씨 탓도 있었다. 새벽 4시 경에 후두둑 후두둑 하는 빗소리가 나를 깨웠기 때문이다. 젠장! 나무에 묶어놓은 자전거를 컨테이너 안으로 들여놓고 다시 잠들었다. 내일은 날씨가 맑다기에 강행군 하지 않고 기다린 건데 비가 그치지 않으면 하루를 쉰 의미가 없잖아.
아침에 일어나니 안타깝게도 비가 쏟아지고 있었다. 그래도 더 이상 쉴 수는 없다. 캠핑장을 체크아웃하고, 비닐 비옷을 사서 입었다. 자전거를 타고 어떤 목적지까지 가는 거라면 그 목적지 숙소에 도착해서 옷은 빨고 몸은 씻어내면 된다. 하지만 기차를 타야되면 사정이 다르다. 옷이 젖으면 안된다. 안그래도 젖은 샌들에서 계속 냄새가 나 다른 사람들한테 미안해 하는 참이다…
다행인 것은 챙겨간 나이롱 바지가 위력을 발휘했다는 것이다. 한시간 넘게 비를 많이 맞아 젖었는데도 역에 도착해서 시간표를 확인하고 있자니 금방 말라버렸다.
머피의 법칙인가… 역에 도착하니 날씨가 좋아져 햇빛이 나고 있었다. –;
기차에 탑승!
시간표에는 베로나라는 곳에서 한번만 갈아타면 뮌헨까지 갈 수 있다고 나와 있었다. 기차는 달리고 달려 내가 달려 왔던 길을 되돌아 간다. 엇그제 내가 두시간넘게 걸린 길(Padova까지)을 10분 만에 주파해버린다… 할 말이 없다.
드디어 이탈리아를 벗어나는 구나. 항구도시 바리에 배로 도착한지 13일만이다. 이탈리아여 안녕~ 차우차우!
동년 동월 동일 20:56
뮈닉가는 기차 안.
(할아버지들의 발음이 뮈닉이었다)
기차를 네번 갈아탔다. –;
베네치아를 출발해 베로나에서 내렸다. 뮌헨가는 기차를 바로 갈아 타려고 보니 하필이면 자전거 칸이 없는 열차였다. 원래 국경을 가로질러 장거리를 뛰는 기차는 자전거 칸이 대부분 없나보다.
‘불행히도 ‘내가 가진 기차 타임테이블에는 자전거 정보는 표시가 안 되있었다. 그러니 모를 수 밖에…
하지만, ‘다행히도’ 나랑 똑같이 베네치아에서 뮌헨으로 자전거를 가지고 가는 할아버지 두 분을 만났다. 그 분들도 자전거 칸이 없는 걸 알고는 당황하고 있었다. 그래도 현지인이라 지리에 익숙한지 다른 역을 거쳐 뮌헨에 가는 방법을 금방 찾아냈다. 베레네렌인가… 내가 가진 타임테이블에는 나오지도 않은 역이다. 그래서 나는 그 분들을 졸레졸레 따라가게 되었다.
이탈리아-오스트리아 국경에서 한번 갈아타고(그 베레네레인가 뭔가 하는 곳), 오스트리아-독일 국경에서 다시 한번 갈아탔다.
오스트리아를 넘어 북쪽을 향하니 대번에 날씨가 추워졌다. 아직까지 한번도 안 입은 긴팔티를 꺼내 입었다. 할아버지들이 여기가 높은 지역이라 그렇다고 한다. 해발 2000미터인가? 뮌헨에 가면 다시 따뜻해질 거라고 했다. 환승을 기다리면서 할아버지들이 맥주도 한 잔 사줬다. 조금은 몸에 온기가 돈다.
할아버지라고해서 비실비실한 그런 분을 상상하면 안된다. 백발이 성성하지만 눈높이가 나랑 비슷할 정도로 키가 크고, 덩치는 나보다 좋다. 베로나 부터 베네치아까지가 완만한 내르막길이라 자전거로 하이킹을 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라고 했다.
나이를 먹고 그렇게 레포츠를 즐기는 걸 보면 참 대단하다는 생각이 든다.
이탈리아에서도 길거리에서 자전거 동호인을 만나면 거짓말 아니라 20% 아저씨이고, 80%는 백발 할아버지다. 건강한 삶이란 바로 이런게 아닐까. 나도 늙어서까지 자전거를 즐겨야지. 그때도 기력이 되려나…
열차를 여러번 갈아타면서도 함께 다니면서 많은 이야기를 했다. 열차가 지나가는 곳이 어떤 곳인지 설명도 계속 해주었다.
오스트리아는 그냥 지나오기만 했지만 창밖으로 보이는 풍경이 마치 동화에나 나오는 것 처럼 보였다. 푸른 산언덕에 짙부른 침엽수들과 띄엄띄엄 붙어있는 집들.
그 높은 산들 위로 엄청나게 높은 다리를 만들어 차들이 지나가는 도로를 만들었는데 통행료가 무지 비싸다한다.
기차 길도 엄청나게 많은 터널을 지나는데, 상당히 돈을 많이 들였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
할아버지들은 뮌헨에서 다시 자신들의 시골 마을로 더 가야한다고 했다. 헤어지기 전에 내가 한국엽서에 내 이름과 주소를 적고 to young grandfather 라고 적어서 건네주었더니. 고맙다고 웃는다. 진짜 할아버지 같지가 않았거든…
한 할아버지가 자기 명함을 주면서 뮌헨에서 프랑크프루트로 가는 길에 자기 마을이 있으니 꼭 들리라고 가는 길을 자세히 알려 주었다.
할아버지 마을은 원래 내가 버스로 갈지 자전거로 갈지 고민하고 있는 로만틱 가도 인근에 있었다. 이제 버스로 갈 필요가 없어졌군. 자전거로 지나면서 할아버지 집에 들려야지.
뮌헨 다음 일정으로 할아버지 마을이다.
뮌헨 역에 도착해서 GPS로 유스호스텔을 찾았다. 독일말로는 유겐트 헤르베르게라고 한다. 이 곳이 독일에서 가장 큰 호스텔이라는데, 건물도 두개이고 도미토리룸이 한 40명 정도 쓰게 되있다. 헉! (훈련단에서 한 중대가 같이 쓰던 내무실 같다.)
리셉션에서 일본 여자 두명이 나를 보고는 대뜸 일본어로 뭐라뭐라 물어본다. 내가 일본놈처럼 생겼나 보다. 물어보니 그렇단다. 왠지 반갑지는 않은데?
나눠주는 침대 시트도 안 받고 들어가려고 하는 등 실수 연발이다. 으이그…
도미토리 룸에 올라갔더니 짱꼴라 두명이 있었다. 다른 여행자들에게 들은 말로는 짱꼴라 중 일부 돈 많은 놈들 자식들이 해외로 많이 돌아다닌다는데, 일반 배낭여행하는 사람 처럼 보이지 않고 앞서 말한 그런 부류같이 보였다. 왠지 정이 안간다…
그러고 보니 낮에 빅맥 한 개를 먹은 후로 아무 것도 안먹었구나. 나가서 먹을게 없나 찾아 보았다. 늦은 시간이지만 맥도날드가 문을 열었다. 하는 수 없이 또 빅맥을 먹었다. –; 한국에서도 맥도날드는 한 번인가 두 번밖에 안가본 나에게, 미디엄 or 맥시라고 물어보면 내가 어떻게 아냐고! 그냥 맥시라고 했다.
광장 밴치에 앉아 식사를 했다. 저녁 때가 지난 시간이라 그런지 거리가 조용하다.
이탈리아 바리에서 만난 자전거 투어 사람들하고 기차에서 만난 할아버지들 때문에 독일의 첫인상은 참 좋았다. 막상 도착해서는 별로 안좋다. 유스호스텔의 분위기도 그렇고 거리의 풍경도 낮설기만 하다. 이탈리아처럼 며칠 지나면 괜찮아질까?
하루종일 기차에 가만히 앉아있기만 했는데도 피곤하다. 기차 안에서 졸리는걸 밤에 잠 안올까봐 참았더니 잠이 몰려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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