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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ukits 2004/10/06 16:57 PM 고유주소 | 댓글달기  

    20. 런던 

    diary – 20. London

    정들어 버린 로뎀의 집 식구들과 작별인사를 하였다. 장기투숙자이신 아저씨는 주무시고 계셔서 인사들 못드렸는데 지금도 못내 아쉽다.
    시베리아를 횡단해 자전거로 유럽을 여행한 로뎀지기이신 분은 한편으로는 부럽고 동질감도 많이 느껴졌었는데 헤어지는게 상당히 아쉬웠다. 자기가 여행할 때 쓴 일기 사이트를 알려줬는데 나중에 읽어 봐야겠다.
    http://wowfrance.com/treavel

    그래도 며칠 돌아다녔다고 파리 지리가 익숙하다. 겨우 눈에 익은 도시를 이제 떠나야 하다니. 그런 이유로 빨리 버스터미널에 안착할 수 있었다.

    어제 산 초코바를 까 먹고 앉아있는데 배가 아프다. 아차, 초콜릿을 많이 먹으면 배가 아프다는 사실을 잊고 있었군! 하지만 선택의 여지가 없다. 먹을 거라곤 그것 뿐이니…

    체크인은 출발 1시간 전 부터다. 창구의 여직원은 여권을 보더니
    “짐이 많아요?” 라고 말을 하는게 아닌가. 내가 놀랬더니, 3가지 말만 할 줄 안다고 했다.
    “안녕하세요”, “짐이 많아요?”, “감사합니다”
    나는 짐이 2개라고 말해주고 승차권과 수화물 꼬리표를 받았다.
    여직원은 마지막에 “감사합니다”라고 인사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물론 나도 똑같이 한국 말로 인사를 했다. 자신의 업무이기 때문이긴 하겠지만 웃으며 우리나라말로 대해준 게 고마웠다.

    차 앞에 도착해 무작정 수화물 꼬리표를 붙이고 짐칸 안쪽으로 밀어넣고는 다른 짐을 보니 이름이랑 목적지가 써있었다. 이런… 그래서 반대쪽 빼꼼히 열리는 문을 열어 꼬리표를 뜯고 다시 기입한 후에 붙였다.
    잘 알지도 못하면서 성급하게 행동한게 부끄러웠다.

    버스는 그리스에서 탔던 버스처럼 2층으로 되있는데 1층은 운전사만 이용하고 뒷쪽은 화장실과 짐칸이다. 2층은 승객칸이다. 경치가 좋을 것 같아 맨 앞자리에 앉았다.
    승객은 많지 않아 내 옆자리에 같이 앉았던 중국인은 불편한지 도중에 뒤로 가버렸다.
    근데 경치를 구경하는 건 좋지만 벌레들이 차창에 부딪혀 터지는 광경을 봐야 하는 것 때문에 좋지 많은 않았다. ^^;

    버스는 3시간여를 달려 까레 라는 항구에 도착하고 차에서 내려 출국 심사를 받았다.
    다시 차는 그대로 페리 안으로 들어갔다. 배 안에서는 차에서 내려 돌아다닐 수 있다.
    깜박 잊고 환전을 하지 않은게 생각나. 울며 겨자먹기로 환율이 높은 배 안 환전소에서 일단 50£ 만 환전을 했다.

    갑판에 올라가 바닷 바람을 맞으니 그리스에서 이탈리아로 올 때 생각이 났다. 배를 또 타게 되는 구나. 바닷바람에 몸이 날라갈 것 같다. –;
    그 때처럼 상당히 오래 배를 탈 것으로 예상하고 여유를 가지고 있다가 나중에 배가 고파지면 배 안의 식당에서 먹음직스럽게 보이는 음식들을 사먹으려고 했다. 근데 배는 1시간 만에 영국에 도착해버렸다. 하는 수 없이 저녁은… 초코바다!

    버스는 배에서 내려와 입국 심사장에 우리를 내려 주었다. 안내방송으로 Luggage 뭐라고 하는데 프랑스어라 제대로 듣지 못했다… 는 핑계고 영어라고 했어도 못들었을 거다.
    어쨌든 입국 카드를 작성해 심사대에서 심사를 받았다.
    몇일간 체류할 건지 출국 비행기 표를 보여주고 여행자라는 것을 말하는 걸로 간단하게 수속을 마쳤다.

    심사대를 빠져나오자 공항에서처럼 화물을 찾는 곳이 있었는데 난 별 대수롭지 않게 여기고 그곳을 빠져나왔다. 내 짐은 버스에 있다구. 그런데 버스 기다리는 곳에 가보니 사람이 아무도 없는 것이었다. 혹시 내가 늦게 나와서 가버렸나. 몹시 당황해 우왕좌왕하고 있는데, 사람들이 버스에 실었던 자기 짐을 챙겨서 하나 둘씩 나오는 것이었다.
    짐 검사 때문에 버스에서 짐을 내리기 때문에 자기가 챙겨와야 하는 건데 난 모르고 그냥 나와버린 것이다. 다시 들어가려고 하니 그 문은 안쪽에서만 열리도록 되어있었다. 젠장…
    짐 관리하는 직원은 이런 일이 익숙한지 유리창으로 나를 보고는 다가와서 문을 열어주었다. 다시 짐이 나오는 곳으로 가보니 내 가방이 있었다. 자전거는 부피가 커서 그냥 버스 안에 넣어놓았다고 한다. 아 챙피해라…
    고맙다고 말하고 다시 버스로 돌아오니 운전기사가 웃는다.
    내가 제일 늦게 돌아왔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버스에 앉아 한참을 기다리니 흑인들이 그제서야 심사를 마치고 돌아와 자리에 앉았다. 그 사람들은 뭔가 더 복잡한 심사 절차가 필요한가보다. 조국이 힘 없고 못살아 국민들이 고생하는구나. 남의 일 같지가 않다.

    다시 버스는 런던을 향해 달렸다. 영국은 차량이 좌측통행이라 적응이 안된다. 내가 운전하는 것은 아니지만 보는 것만으로도 혼란스럽다. 한시간 넘게 달려 런던에 도착했다. 런던에 도착하자 거짓말처럼 하늘에서는 빗방울이 쏟아졌다. 젠장. 난 뭐 항상 이런 식이지. 아직 숙소도 확실히 정하지 못했는데…
    날은 어둡고 비는 오고 환전은 지폐로만 해 동전전화기를 사용할 수도 없고… 마침 유로화도 사용가능하다는 전화기에서 남은 유로동전으로 전화를 시도했지만 되지가 않았다. 그냥 먹어버렸다. 그것도 3?力?…

    하는 수 없지… 자전거를 조립하고, 베낭에 커버를 씌우고, 비옷을 입고 무작정 달렸다.
    일단 여기 버스 정류장은 남쪽이고 북쪽으로 가다보면 탬즈강이 나오겠지.
    차들이 왼쪽통행인데다 일방통행로가 많고 길이 복잡해 주행하기가 여간 힘든게 아니다.
    길가 슈퍼에서 내 영원한 동반자 바나나를 사면서 동전을 만들었다.
    전화 박스를 찾아 내가 원래 갈 예정이었던 민박집에 전화를 하니 기계가 받아 음성사서함이 나온다. 그러면서 돈은 꼬박꼬박 떨어지네… 전화가 한통화에 40p, 약 800원이다. 헉. 아까운 내 돈! 하는 수 없이 다른 민박집에 전화를 해 위치를 알아내고 그쪽으로 가기로 했다.

    비는 오고 북쪽으로 달리는데 아무리 가도 탬즈강이 나오질 않는 것이었다. 길 가는 할아버지께 물어보니 완전 반대방향이라는 것이다.
    나중에 알았지만 탬즈강은 런던을 동서로 직선으로 가로지르는 게 아니고 S 자를 그리고 있는데 내가 내린 버스 승강장은 남쪽에 있긴 하지만 탬즈강 보단 북쪽에 있었던 것이다. 가이드 북이 흑백이라 물을 구분 못했다, 이런!

    숙소는 런던 동쪽의 Poplar라는 곳이었다. 다시 남동쪽으로 내려와 수십번이나 길을 물어 그 곳을 찾아냈다. 다행히 멀긴 먼데 많이 멀진 않았다.
    왜 GPS를 안썼냐고? 런던 지도를 너무 크게 저장해오는 바람에 PDA가 메모리 문제로 지형을 표시하질 못한다. 몹시 안타까웠다. 이제 마지막 도시인데… 런던에서는 그냥 지도만 의지해서 다녀야 하겠군.

    숙소는 작지만 아담하고 좋았다. 알바생이 반갑게 맞아주었다. 특히나 이곳은 시리얼이나 빵이 무제한이라 너무 좋다. ^^
    민박집에서 혹시나 저녁을 줄까 하는 마음에 안먹고 들어왔는데 저녁은 없었지만 공짜 시리얼을 가득 퍼먹었다. 아무래도 양이 안찬다. 그래서 50p 를 주고 라면을 끓여먹었다. 초콜렛만 하루종일 먹다가 시리얼이랑 라면을 먹으니 좀 살 것 같네.

    2004년 10월 02일 토요일

    아침에 일어나서 주방엘 가니 음식을 하는 민박집 주인이 아주머니가 아니라 누나라 깜짝 놀랬다. 서른 중반인데 민박집을 하고 있다고 하니 약간은 어색하게 느껴진다.
    하지만 반찬도 여느 민박집보다 많고, 밥도 맛있었다.
    어제 비를 맞고 와서인지, 늦게 잠을 자서인지 몹시 피곤해 밥을 먹고 다시 잠을 청했다.

    점심 때 일어나 보니 집에 나 혼자밖에 없었다. 여유롭게 컴퓨터로 그동안 못올렸던 사진을 올리고 인터넷을 즐겼다. 비온 뒤라 그런지 날씨가 제법 쌀쌀하다.

    조금 있으니 어제 묵으셨던 노부부와 알바생이 돌아왔다. 영국을 돌아보고 오늘 돌아간다고 하셨다.
    여기 알바생은 어학 연수하러 와서 여기 민박집에 알바를 하는데 여기서 숙식도 해결하고 오히려 돈을 받는다고 했다. 이 정도 조건이면 어학 연수도 그리 부담이 되지 않겠는걸?

    내가 안나가고 있으니 영국에서 OUT하는 사람들은 다들 나가서 관광하기를 귀찮아한다고 한다. 더군다나 나는 본의 아니게 일정에 여유가 있으니…
    마침 노부부께서 쓰셨던 지하철 1일 사용권을 나에게 주었다.

    환전도 하고 야경도 구경할 겸 늦게 민박을 나서 영국 시내를 돌아보았다.
    우리가 말하는 허니문카, 거대한 런던아이London Eye를 보고, 런던의 중심 트라팔가 광장을 거쳐 피카디리 서커스, 쇼핑으로 유명한 옥스포드 거리 까지.
    예술과는 거리가 먼 나지만 뮤지컬 오페라의 유령 표를 예약하러 공연장에 들렸으나 시간이 늦어 구할 수가 없었다. 월요일날 다시 와봐야지.
    환전은 일단 더 버텨보고 하기로 했다. 환율을 좀더 생각해 본 다음에…

    생각보다 지하철 시설이라든지 지하철 차량이 깨끗하다.
    영국이라면 영어English의 본 고장이라 사람들이 하는 말을 어느정도 알아먹을 수 있을 거라 생각했는데, 전혀 귀에 들어오질 않는다. 물론 나에게 뭐라고 할 때는 주의 깊게 듣고 관련된 단어가 나올걸 알기 때문에 알아들을 수는 있는데, 지하철에서라든가 거리에서 그들끼리 주고 받는 농담이나 대화가 하나도 귀에 들어오질 않는다. 대략 난감하다…
    그래도 거리엔 그나마 알아먹을 수 있는 문자(영어)가 있는게 다행이다.
    차량 좌측통행만 빼고 다른 것만 본다면 영국에 정말 친근하게 느껴질 것 같은데.

    집에 돌아오는 길에 슈퍼를 찾았는데 이른 저녁인데도 다들 문을 닫아버렸다. 아까 시내에서 사가지고 올걸…

    다시 민박집에 돌아와 오늘도 라면으로 저녁을 때웠다. 50p (1,000원) 짜리 최저가(!) 저녁이다. 길거리에서 파는 샌드위치나 소시지도 3£ 정도이고 맥도날드 조차도 4£ 해서 도저히 선뜻 마음이 가질 않는다.
    그렇게 해서 오늘 쓴 돈 50p. ^^
    영국은 박물관이나 미술관 입장료도 대부분 무료라 숙박비와 식비만 해결하면 그다지 많은 돈이 들 것 같진 않다. 비 안오면 교통비도 안 든다. 근데 불행히도 내일, 모레 일기예보는 비를 점치고 있다.
    또 거기다 예상치 못한 곳에서 돈이 나갈지도.. –;

    주말이 끼어서 항공편 예약 변경도 수월치가 않고… 지긍 상황에서 최대한 계획을 잘 짜서 영국을 경험하고 돌아가야겠다.

    2004년 10월 03일 일요일

    일요일이다. 나에겐 7일이 모두 일요일이다. –; 영국 박물관/미술관은 거의 다 무료이고 일요일도 쉬지 않는다. 자! 힘을내 구경하고 오자!

    버킹엄궁 근위병 교대식 관람 실패.

    지하철 1일 패스를 끊었다. 왔다 갔다 왕복만 하더라도 일일쿠폰보다 비싸기때문이다. 얼마든지 타고 내릴 수 있으니 좋다.
    먼저 유명한 버킹엄궁의 근위병 교대식을 보러 갔는데, 겨울 시즌엔 하루 걸러하고 날씨가 흐려도 안한다는 것이다. 군인이 말이야 비가 오나 눈이 오나 할 건 해야지! 완전 보여주기 위한거잖아…

    자연사 박물관 관람.

    비를 부슬부슬 맞으면서 박물관을 찾았다. 티켓을 검사하지 않으니 오히려 어색하다. 내가 관심있어 하는 공룡과 진화론 그리고 동물, 식물, 인체의 신비 등에 대해 많은 전시물들과 자료가 있었다.
    우리나라의 박물관을 다녀보면 뭔가 보더라도 어설퍼 보이고 2% 부족하게 느껴지는데, 해외의 박물관과 전시관을 다녀보면 양은 물론이거니와 질에서 차이가 느껴진다.
    일단은 돌아가서 우리나라 박물관들을 다시 다녀봐야겠다. 잘 비교해봐야지.

    과학 박물관 관람.

    과학 박물관은 자연사 박물관 바로 옆에 있다. 지구, 우주, 에너지, 첨단기술, 수학 등을 주제로 나뉘어져있는데, 약간 애들 수준에서 참여할 수 있는 공간이 많이 마련되 있었다.
    또 의외로 물리나 수학에 관심이 간단 말이야… 관심이 간다는 말이지 잘 한다는 말은 아니다.

    전쟁 박물관 관람.

    내친 김에 박물관 순회공연을 하기로 했다. 지하철을 타고 저 멀리 전쟁 박물관에 갔다.
    1, 2 차 세계대전과 각종 크고 작은 전쟁 코너가 모두 다 있었다.
    특히 Band of brothers 나 Saving private Ryan 에서 나오는 D-Day 특별전이 열리고 있어 관심있게 보았다.

    한국전쟁에 관한 코너도 있어 눈길을 끌었는데, 이들에게는 한국이라는 나라에서 일어난 전쟁이 베트남 전쟁 보다 더 비중 없이 다뤄지는게 아쉬웠다. 베트남 전쟁이 더 크긴 했지.
    한국 전쟁에서 인천상륙작전이 연합군의 승리에 얼마나 중요한 역할을 했는지 다시 느꼈다.

    마담터소 관람 실패.

    날이 저물지 않아 다시 지하철을 타고 마담 터소를 찾아갔다. 터소 아주머니는 프랑스 왕족들의 밀랍인형을 만드는 사람이었다. 그 후 그 명성을 이어 실존 인물들의 밀랍인형들이 제작되어 전시되고 있는데, 너무 늦게 왔는지 입장 할 수가 없었다.

    영국은 5시만 넘으면 가게들이 다 문 닫을 채비를 한다. 하는 수 없지 숙소로 돌아가자.

    이틀 연속 저녁을 라면으로 해결했기 때문에 슈퍼에서 다른 음식들을 사먹기로 했다.
    중간 갈아타는 역에서 큰 슈퍼를 찾았는데 역시나 일요일이라고 일찍 문을 닫았다. 영국 사람들은 쉴 땐 확실히 쉬는 구나.

    숙소에 돌아오니 다행히도 주인누나가 김밥을 싸주셨다. 먹을 복이 있네~
    약간 모자란 듯 했지만 밤이라 그냥 잠을 청했다.

    2004년 10월 04일 월요일
    민박집 식구들이 잘 대해 주신다. 너무 잘 대해주셔서 큰일이다. 아침밥을 반 강제로 밥을 두 공기 먹었다. –;
    인터넷 하는 사람이 없어 조금 여유있게 컴퓨터를 할 수 있었다. 사진도 올리고 한국 시간은 오후라서 친구들과 이야기도 나눴다. 속도 모르고 부럽다네-. 난 죽느냐 사느냐인데. ^^

    경도 0도에 서다.
    그리니치 천문대가 있는 그리니치에 들렸다. 한때 가장 빠른 배였다는 커티 샥 배도 구경하였다.

    왕립 그리니치 천문대는 누구나 다 알 법한 국제 표준시의 기준이 되는 곳이다. 여기를 기준으로 동쪽은 +, 서쪽은 – 로 시차가 난다.
    천문대에 들어가기전 PDA에 GPS를 연결하고, 경도와 위도를 측정했다. 조금씩 이동해 경도 0도의 위치에 서서 기념촬영!

    가이드 북에는 천문대가 입장료가 있다고 나와있는데 그냥 티켓만 받아서 무료로 입장 할 수가 있었다.

    별을 이용해 위치를 측정하는 방법이라든가 각종 시계, 천체관측법 등을 볼 수 있었다.
    한국의 해시계도 소개되 있어 기분이 좋았다.

    다시 런던 시내 중심가로 나와 뮤지컬 오페라의 유령을 예약 했다.
    가장 싼 티켓도 자리가 없어 겨우 예약을 했다. 잘 안 보일거라고 하는데 어쩔 수 없지.

    내셔널 갤러리를 돌았다. 어찌나 큰지 돌았다는 표현이 맞을 듯 하다. 16세기 이전 까지는 보통 종교와 관련된 성화들이 주류를 이루고 있다. 바티칸에서 본 그림들도 그렇고 당대의 이름을 날린 다 빈치나 미켈란젤로 라파엘로의 그림들도 대부분 종교와 관련되 있다.
    그게 점점 시대를 거슬러 오면서 풍경화 인물화 정물화를 거쳐 현대의 추상화까지 오게된다.

    인상이 깊었던 그림은 렘브란트의 자화상인데 34세의 자화상과 63세의 자화상이 벽을 두고 마주보고 있다. 늙은 렘브란트의 얼굴에는 젊은 얼굴과는 다른 무언가가 느껴져 안타까움 같은게 느껴졌다.

    그 거대한 미술관을 다 보고 나오니 다리가 무척 아프다. –;
    내셔날 갤러리 앞은 바로 트라팔가 광장인데 깨끗한 분수와 많은 비둘기들이 사람 보다 더 많은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잠시 쉬었다가 어제 보지 못했던 마담 터소를 보기위해 길을 나섰다.
    가는 길에 가지고 있던 유로와 달러를 파운드로 환전을 했다.
    치사하게 1유로 동전까지만 바꿔주고 50센트유로 짜리 부터는 안바꿔 준단다. 할 수 없지…
    이게 내 마지막 생활 자금이구나…

    마담 터소는 오후라 그런지 다행히 사람이 많지 않았다. 입장료가 꽤나 비쌌지만, 들어가보니 비싼 이유를 알 수 있었다. 나에게는 별로 도움도 안되고 감흥도 없는 미니 기차타기, 손님 중 몇명이 직접 참여하는 전쟁 이야기, 천문관 등의 요금이 다 포함되 있는 것이었다. 차라리 다 빼고 싸게 팔지…

    입구에 PDA 가이드가 있다고 써있어 반가운 마음에 얼른 달려가 내 PDA를 보여주니 가이드 프로그램을 내 PDA에 다운로드 받는 게 아니고 거기서 PDA 자체를 제공하는 것이었다. 아쉽네…

    유명 영화배우의 밀랍인형들과 사진을 찍었다.
    제니퍼 러브 휴잇 인줄 알고 사진 찍고 보니 다른 배우였던… 이름 모를 여배우.
    모건 프리먼, 톰 크루즈, 아놀드, 비틀즈, 우피 등등… 신기해서 입이 쫙 벌어졌다.
    실내라 어쩔 수 없이 플래시를 터트려 사진을 찍을 수 밖에 없어서 정말 아쉽다.

    예매한 오페라의 유령 시간을 17:30으로 생각하고 그 시간에 맞춰 밖으로 나왔다. 간단한 빵과 콜라를 사 트라팔가 광장에서 꾸역꾸역 먹고 시간에 맞춰 가보니 시작시간은 7:30 pm 이었다.
    왜 이렇게 허둥지둥 하는거지…

    하는 수 없이 트라팔가 광장에 돌아와 다른 사람들 처럼 앉아있었다. 요플레 회사에서 판촉행사를 나와 공짜로 나눠주었다. 젠장 숟가락은 왜 안 주는 거야? 날씨가 추워서 잘 흘러내리지도 않네…
    어두워지면서 광장의 날씨가 쌀쌀해져 지하철로 피신했다. –; 일일 무제한 표라 출입은 문제가 없고 다만 지하철은 공기가 안 좋은게 그냥 봐도 딱 보였지만 추운 것 보단 나았다.
    그렇게 시간을 버티다 19:30 분이 되어 다시 뮤지컬 극장으로 향했다.

    처음 보는 뮤지컬.
    문화생활과는 거리가 먼 나는 뮤지컬을 상당히 비싼 돈을 주고 본다는 걸 이해할 수가 없었다. 그래도 뮤지컬의 고장이라는 런던에 와서 한번 보고 가자 하는 마음에 별 기대 없이 들어왔는데, 뮤지컬이라는게 상당히 매력있는 볼거리라는 것을 느꼈다.
    웅장한 음악과 상상을 초월하는 무대효과 같은 것들이 비록 언어는 달라 이해는 힘들었지만 그런 것들을 감수하더라도 감동을 느끼기에는 부족함이 없었다.
    막이 내리고 오케스트라가 마지막 음악을 멈출 때까지 그 광경을 지켜보다가 박수를 쳐주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가장 싼 내 좌석 옆으로 모두 한국인 여행자들이 앉았는데, 정석 여행 코스로 런던으로 들어오신 분들이라 여행 막바지인 내가 여행 잘 하시라고 조언을 좀(!) 해주었다.

    타워 브릿지 야경.
    런던 탑과 함께 있는 타워브릿지는 안에 들어가 볼 수도 있지만 밤에는 그냥 야경만 볼 수 있다. 지하철에서 내려반대편으로 걸어가 야경 사진을 찍었다.
    강가로 데이트 나온 연인들이 염장을 지른다. 한 중년 커플은 거리의 악사 음악에 맞춰 노골적인 춤을 춘다. 저건 추태야…
    밤이고 강가이다 보니 바람이 몹시 차다.

    숙소로 돌아가는 길에 다시 슈퍼마켓에 들렸으나 역시 문을 닫았다. 시간이 11시가 넘었으니…

    오늘도 하루종일 강행군이 었다. 숙소에 돌아오니 다들 하루를 마감하는 분위기다. 우유를 한잔 마시고 느긋하게 인터넷을 늦게까지 즐겼다.
    집이 아니니 그 역시도 아주 편하지만은 않다.

    2004년 10월 05일 화요일
    숙소의 아침은 항상 분주하다. 말 많은 주인 누나의 목소리와 도마 칼질 소리에 잠이 깨 아침을 맛있게 먹었다.
    어제 늦게까지 안 잔 탓인지 아침을 먹고도 잠이 와 다시 자리에 누워있었다.

    점심 때가 되서야 일어나 씻고 아예 점심까지 토스트로 해결하고는 길을 나섰다. 어쩌면 하이라이트라고 할 수 있는 영국 박물관이다.
    돈을 주고 투어를 받을까 하다가 여기 민박집에서 7£ 짜리 가이드북을 발견했기 때문에 ^^ 그냥 그 책을 들고 가서 돌아보기로 했다.

    아무래도 크기로 보면 프랑스의 루브르 박물관이 훨씬 큰 것 같다. 근데 동선으로 따지면 영국 박물관이 훨씬 덜 복잡하다.
    역시나 유럽의 역사는 그리스/로마가 많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었고 여기엔 페르시아와 중국 등의 아시아 문명에 대해서도 많이 소개되고 있다.
    한국관도 따로 마련되어 있지만, 한국인인 내가 보기엔 한국적인 뚜렷한 색체가 없는 듯 했다. 하긴 여기는 한국을 알리는 곳이 아니고 한국의 유물들을 전시해 놓은 곳일 수도 있으니까…
    대부분의 불교, 화폐 등의 아시아 유물들이 우리나라가 아닌 중국을 기준으로 설명되 있어 아쉬웠다.

    별다른 계획 없이 다시 숙소로 돌아왔다. 정말 마지막이라 그런가… 아니면 체력이 소진된 건가? –; 만사가 귀찮고 힘이 빠진다.

    오늘은 이른 시각이라 갈아타는 역의 슈퍼가 문을 열었다. 막상 살 것도 없었다.
    나의 친구 바나나와 오늘 저녁에 먹을 통닭, 샐러드. 내일 안나가고 버티면서 먹을 스파게티 등을 샀다.

    막상 집에 와보니 출장와 묵고 계신 아저씨 두분 외엔 아무도 없었다. 아저씨들은 통닭을 안드신다고 하셔서 하는 수 없이 혼자 통닭 분해 작업에 들어갔다. 다리 하나 쯤 남았을 무렵 아저씨들이 내려오셔서 저녁을 해 드시는데, 얼떨결에 나도 끼어서 우동이랑 빵, 과일을 먹었다. 아저씨들 말 대로 만찬이었다.

    나이가 지긋하신 아저씨 말씀이 자기가 졸업하고 힘든 일을 하는 아들에게 이렇게 말했단다.

    ‘나는 지금 네가 들고가는 짐이 무척 힘들어 보인다. 남은 60년 동안 못 들고가겠으면 놔버려라. 단 들 다른 짐이 있을 때 놔라’
    결국 아들은 직장을 그만 두고 편입을 했다고 한다.
    나는 평생 들고갈 다른 짐을 만들어 놨는가. 아저씨들은 젊은 나이에 여행하는 것이 용감한 일이라고 칭찬해 주었지만, 정작 나는 이룬 것이 없다.

    급할 거 없다. 차분히 생각하자. 지금도 늦은 게 아니다.

     
  • ukits 2004/10/01 08:07 AM 고유주소 | 댓글달기  

    18. 니스, 모나코 

    diary – 18. Nice

    2004년 09월 29일 수 17:24
    니스역 파리행 야간기차를 기다리며

    27일 저녁, 야간 쿠셋 열차를 타고 니스로 달렸다. 나는 혹시나 내가 발냄세나 나지 않을까 걱정하는데 여긴 암내 나는 사람이 그리도 많다. 프랑스 뿐만이 아니라 전 유럽이… 내 발냄세는 같은 칸을 쓰는 누군가의 암내에 뭍혀버렸다.
    프랑스 흑인 여자도 한명 있엇는데, 폐쇄공포증이 있는지 몸이 원래 더운지 문을 못닫게 한다. 왜 그런지 설명을 하고 부탁을하면 기쁘게 받아들이겠는데 무조건 플리즈 플리즈 하면서 당연하다는 듯이 요구를 하길래 기분이 나빠졌다. 난 추워죽겠는데…
    그래서, 새벽에 화장실 갔다오면서 닫고 자버렸다. 니스에 도착할 때가 되 일어나보니 다른 역에서 내렸는지 아무도 없었다.
    해변을 따라 달리는 아침 열차 창에 서서 일출을 감상했다.
    같은 기차를 탄 한국인 커플을 만났는데, 영국에서 유학을 하고 있다고 했다. 저번에 피렌체에서 만난 커플처럼 맨날 싸우는 것 같지만 무척 부러웠다.

    지중해 휴양도시 니스는 대도시 파리처럼 정신없지 않고 한산해 보인다. 아직은 이른 시간이라 해변으로 걸어나가 경치를 감상했다. 이게 그 유명한 니스 해변이구나…

    피자 한조각으로 아침을 때우고, 니스의 민박집을 알아보기 위해 PC방엘 들렸다.
    유럽엔 국제전화를 저렴하게 할수있는 폰샵에 인터넷 시설이 붙어있는게 대부분인데 니스엔 게임하는 목적의 PC방이 있었다. 그런데 시간당 5??. –; 우리나라에서 처럼 밤을 세가며 게임은 못하겠구나.
    한글 문제로 제대로 민박집을 알아보지 못하고 그냥 역 인근에 호텔을 잡았다. 호스텔이 꼭 나쁜건 아니니까.

    몬테카를로에서 할로우처럼…
    move like Halo in Monte Carlo and…
    할로우가 누군진 모르지만 그 노래 처럼 나도 몬테카를로에 있었다. 니스에서 숙소를 잡고 나서 점심 때가 넘어서 도착한 모나코는 정말로 다른 세상처럼 느껴졌다. 세금도 없어 부자들이 많고 5월엔 도로 막고 레이싱 열린다. 도시가 상당히 작지만 깨끗했다. 나라 자체가 걸어서 한바퀴 돌 수 있을 만큼 작다.
    걷다가 발견한 굵은 모래 해변의 물은 카프리의 물처럼 속이 훤히 들여다 보이고, 해수욕장인데도 팔뚝만한 고기들이 헤엄친다, 들어가고 싶다는 욕구에 옷을 벗어던지고 잠시 수영을 즐겼다.
    여자들도 웃통을 훌훌 벗어제끼고 일광욕을 하는데 너무 비현실적으로 느껴져 별다른 감흥이 없다. –;

    돌아오는 기차에서 다시 그 커플을 만났다. 같이 모나코에 있었었나 보다.

    숙소에서는 같이 방을 쓰는 켄과 알렉스를 만났다. 알렉스는 일본계 미국인인데, 이야기가 잘 통했다. 유럽을 마치고 이집트 까지 갈거라고 한다. 한 서너달 쯤… 대단히 긴 여행이네. 김치와 밥을 좋아한다길래 파리에 가면 찾아가 보라고 내가 파리에서 묵었던 한인 민박집 주소를 알려줬다.
    다음날 일찍 나간다더니 나보다 더 늦게 일어났어. ^^

    뭔가 슬픈 꿈을 꾸었는지 자다가 울었다.
    여행을 시작한 후로 숨어 있던 감성이 되살아나는 것 같다.
    한국은 추석 연휴가 한창일테지…
    침대 위에서 동쪽을 향해 절을 두번 올렸다.

    폰샵에서 사진을 올리는데 너무 느려 엄청 오래 걸린다. 하는 수 없이 중요한 사진만 올리고 나왔다.

    니스의 해변에서 여유를…
    니스의 자갈 해변에서 As one 의 I’ve never been to me 를 들으니 기분이 정말 좋아져 웃음이 절로 났다. 그래, 내가 해보고 싶었던게 이거야!
    결국 여기서도 참지 못하고 수영을 잠시 즐겼다. 옷을 갈아입을 곳이 없어 그냥 바지만 입고 들어갔다가 나와서 그대로 말렸다.
    그렇게 음악을 들으며 누워있으니 마음이 무척이나 여유로워진다. 살이 더 타면 안되는데…

    니스 시내를 한바퀴 돌아 역에 매우 일찍 도착했다. 볼게 그리 많지 않아 시간이 많다는게 정말 좋다.
    거리를 돌아다니다가 우체국을 발견하고 마지막이 될 엽서를 전에 다니던 회사에 부쳤다. 여긴 우표가 좀 비싸군… 0.90??.

    기차가 연착되었다. 파리 반대방향 쪽에 사고가 생겼는지 열차가 오질 않는다. 파리 쪽에서 도착한 열차도 더 나가지 못하고 역에 머물러 있다. 결국 1시간 30분이 지나서야 열차가 도착하고 파리로 갈 수 있게 되었다.
    누군가 말 하길 쿠셋 칸도 자주 타면 내 집처럼 편하다는데 가끔 흔들리는 것 만 빼면 괜찮은 잠자리다. 짐도 많지 않아 걱정없이 푹 잘 수 있었다.

     
  • ukits 2004/10/01 08:06 AM 고유주소 | 댓글달기  

    19. 파리 2 

    diary – 19. Paris 2

    2004년 09월 30일 23:25
    파리 민박.

    원래 아침일찍 도착하게 되어있던 열차는 어제 연착된 이유로 10시가 넘어서야 파리에 도착하게 되었다.
    나는 일정에 여유가 있어서 다행이지만, 곧바로 갈아타야하는 사람들은 문제가 있을 것 같았다. 철도회사 측에서는 그래도 아침 도시락을 준비해서 나눠주었다. 크흑, 덕분에 아침 값 굳었다. 나야 늦게 도착한 건 상관이 없으니까. ^^ 대기실에 앉아 빵과 밥 도시락을 먹었다.

    내가 내린 오스텔리츠역에서 베르사유로 가는 지하철이 있어서, 짐을 맡겨둔 숙소에 들리지 않고 바로 베르사유로 가기로 했다.
    또 RER(지하철)역에서 한국인 2명을 만났다. 일행은 아니고 어쩌다 보니 같은 숙소 같은 침대(?)를 쓰게되 같이 베르사유에 가기로 하고 길을 헤메고 있었다고 했다.
    결국 이 분들하고 오늘 베르사유를 같이 돌아다니게 되었다.

    베르사유는 루이 13세인가 14세인가 하고 마리 앙뜨와네뜨하고 많이 들어본 사람들이 살았던 궁전인데 궁전도 궁전이지만, 그 앞에 펼쳐진 정원이 사람의 상상을 초월하는 것이다.

    우리 셋은 베르사유 궁은 오후 3시 30분이 넘으면 입장료가 2.2?? 할인되므로그돈을 아끼기 위해 정원을 먼저 구경하고 오후에 궁을 보기로 했다.

    그 정원은 갖가지 모양으로 길이 나있고 수 많은 조각들로 꾸며져 있는데, 우리들은 ‘여기서 즐겼단 말이지, 왕이 좋긴 좋구만’, 이렇게 중얼거리며 구경을 하였다. 정원을 벗어난 더 멀리에는 엄청난 크기의 십자가 모양 호수가 있는데 얼마나 큰지 운하라고 불렸다. 그 둘레를 속보로 한바퀴 도는데 한시간이 걸렸다. –;
    다리가 무지 아프고 배가 고파왔지만 민박집에 들어가 공짜로 주는 밥을 먹기위해 참고 버티며 베르사유 궁 까지 모두 관람을 했다. 이것이 바로 헝그리 정신!
    사실 뭐 궁이라고 해서 특별히 볼 건 없었지만 그 화려함에 얼마나 많은 돈과 시간과 노예가 동원이 되었을까.
    결국 이 궁전의 주인공은 벌을 받았는지 처형당했지만, 화려하고 부족한 것 없는 삶 뒤에 처형이라면 그렇게 불행할 것 같지는 않다는 생각까지 해본다.

    돌아오는 길에 그들과 헤어지고, 숙소로 돌아왔다. 큰일났다. 이곳 민박집이 집처럼 정겹게 느껴진다.

    여기 민박집에서는 사람들이 금방 친해진다. 아마도 여행이라는 공통 관심사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처음 만난 다른 두 분과 까르푸에 가서 장을 보았다.
    망해버린 광주의 까르푸 생각이 났다.
    나는 거기서 .44?? 짜리 2l 콜라와 6개 들이 초코바를 샀다. 콜라는 까르푸 기획상품인데 신기하기도 하고 양도 많아서 삿다. 저녁에 다른 분께서 과자를 내놓으셔서 콜라를 사람들하고 나눠먹었는데 아직 반이 남았다. –;

    프랑스, 이태리, 독일… 유럽의 강대국들은 다들 정복의 역사를 가지고 있고, 그런 근성의 사람들과 문화들과 유적들을 감상한 다는 것이 신비하긴 하지만 그래도 나름대로 온순하고 침략적인 성격을 가지지 않은 우리나라 사람의 정서로 이해하기에는 거부감이 많이 든다.
    다만 독일은 자신들의 역사를 반성하고 있고, 기념관 등을 남들고 무료로 개방해 과오를 씻으려 하고 있는데, 프랑스나 이태리는 약자들에게 강탈해오거나, 그들의 노동력과 힘을 이용해 제작한 유적들로 돈벌이를 하고 잘 사는 것이 왠지 아니꼬와 보인다. 특히 내가 처음 이들 나라에 와서 이 나라 사람들에게 느꼈던 이질적인 감정들이 무조건 틀린 것만은 아닐 것이다.

    내일은 영국행 배를 탄다. 비행기 표가 걱정되긴 하지만 마지막 여정을 보낼 영국으로…

     
  • ukits 2004/09/29 17:55 PM 고유주소 | 댓글달기  

    Here is Nice 

    나이스가 아니고 니스.
    내가 좋아하는 노래 I’ve never been to me 에 보면 (음악감상 참조)
    천국과 비유되는 프랑스의 니스와 모나코의 몬테카를로 그리스의 섬들이 나온다.

    그리스의 섬들은 가보지 못했지만 니스 해변과 몬테카를로는 다녀왔다. 여유있게 이곳을 들러보니 내가 노래의 주인공이 된 듯하다. 하지만 노래와는 다르게 나의 정체성을 찾아야지.

    집 떠난지 한달이 다 되어간다. 향수병이 점점 깊어진다.
    돈도 떨어지고… 얼른 돌아가야지. as soon as possible!

     
  • ukits 2004/09/29 17:51 PM 고유주소 | 댓글달기  

    16. 암스테르담 

    diary – 16. Amsterdam

    프랑크프루트에서 일찍 나선 관계로 기차를 다섯번이나 갈아타고도 어두워지기 전에 암스테르담 중앙역에 도착할 수 있었다. 이제 기차를 갈아타는 것에도 익숙해졌다. 워낙 땅덩어리가 크기 때문에 한두시간 기차를 타는 건 잠시라고 느껴질 뿐이다.
    출발할 때는 흐리던 날씨가 결국엔 비를 쏟아내리고 있다.

    원래 숙소를 유스호스텔로 정하려 했는데 정작 도착하고 보니 뮌헨의 유스호스텔이 떠올라 선뜻 내키지가 않았다. 그 어수선했던 분위기…
    궁여지책으로 한국 민박집을 알아보기로 하였다. 한국의 동생에게 전화를 걸었다. 전화를 안 받는다. –; 젠장. 한국 시간으로는 새벽 1시인데 벌써 자나?
    하는 수 없이 저녁거리를 먹을 집을 찾을 겸 해서 비를 맞으며 암스테르담 중심가를 자전거로 돌아다녔다.
    마침 1유로를 넣고 인터넷을 약 40분간 사용할 수 있는 인터넷카페를 발견하고 거기서 민박집을 검색해보았다.
    한국어 윈도우가 아닌 곳에서는 한글 웹페이지를 검색하면 자동으로 한글을 볼 수 있도록 프로그램이 깔리지만 한글을 치기 위해서는 IME라는 것을 설치해야 한다. 근데 그건 재시작을 해야하고 재시작을 하면 시간이 날라가기 때문에 검색창에 영어로 amsterdam 이라고 쳐서 찾을 수 밖에…
    다행히 민박집 카페가 검색되서 전화번호를 적어 나왔다. 엎친데 덮친 격으로 전화기는 모두 카드식 밖에 없었다.

    가이드북에 나온 추천 중국식당에서 저녁을 먹고 그 집에서 양해를 구하고 전화를 쓰기로 했다. 근데 그 중국집이 예상보다 규모가 커 당황했다. 다행히 동전 공중전화기가 있어 민박집에 전화를 했다. 위치와 주소 등만 물어보는데도 0.40?? 가 떨어진다. 도둑놈들… 민박집 전화번호가 틀리거나 없어진 민박집이 아니라 다행이었다.
    민박집은 중앙역에서 두 정거장 거리였다. 다시 비를 맞고 역으로 돌아가 디멘Diemen 이라는 곳으로 가서 GPS의 도움을 받아 민박집을 찾았다.
    아주머니도 자세히 알려주지도 않았는데 찾아왔다고 신기해했다. GPS 여러모로 도움이 많이 된다.

    여기 민박집은 그냥 가정집으로 아들, 딸들이 방학 때 한국에 갔을 때만 빈 방에 민박을 했던 곳인데 지금은 아들, 딸이 돌아와 있어 실질적으로 민박을 하고 있진 않았다. 그렇지만 손님방 하나가 남아서 거기서 잠을 잘 수 있게 되었다. 즉 자리가 하나인 민박집이란 말이다. 운이 좋았지. 짐을 푼 시간이 저녁 10시경.
    암스테르담 밤거리를 구경하기 위해 다시 집을 나섰다. 주인 아주머니가 아예 열쇠까지 주시며 보고 오라고 하셨다.

    박물관을 가기엔 늦은 시간이고 역 인근의 홍등가를 찾았다. 밤이라 그런지 많은 사람들이 있었다.
    암스테르담은 마약, 마리화나나 매춘이 허용되는 곳으로 사람들이 그런 것에 대해 거리낌 없이 생각하고 있는 듯 보였다. 상당히 큰 영역의 그 구역에는 성인용품, 성인비디오 가게와 포르노를 상영하는 영화관이 있고, 매춘부들의 집이 골목골목에 위치하고 있는데, 신기하게도 구역별로 취향에 맞게 고를 수(?) 있게 되어있었다. 이 골목은 흑인, 저 골목은 러시아인, 이 골목은 뚱뚱이. 뚱뚱이들이 제일 엽기적이었다. 웃음이 나오지 않을 수 없었다. 저런 취향을 가진 사람들도 있겠지?
    돌아다니는 사람 중에는 한국, 중국 아저씨들도 많았다. 이런 곳에서 아는체 할 수는 없지. –;
    이런 문화적 차이에 많은 생각이 오갔다. 뉴스를 보니 우리나라는 청량리가 없어지고 한다는데… 이런 곳에서 일한다면 나부터도 나쁜 시선으로 보지만, 스스로 당당하게 행동하는 여성들을 보고 경멸보다는 존경심이 들었다.
    근데 이런데 여자친구랑 오는 사람은 뭐냐고…

    2004년 09월 24일 목

    어제 늦게 도착하는 바람에 여행 안내소와 국제선 기차 예매소가 문을 다 닫는 바람에 오늘 일찍 나서서 정보를 얻기로 했다. 파리행 오후 티켓이 있다면 시내 구경후 민박집에 돌아가 바로 오늘 파리로 갈 생각이었다.

    암스테르담은 열차 예매소가 국내선/국제선이 따로 있는데, 국제선에 비중을 많이 안 두고 있는 듯 했다. 9시면 이른 아침인데도 1시간정도 번호표를 들고 기다려야했다. 짜증이다…
    암스테르담을 보고 있으면 이런 나라가 어떻게 선진국 대열에 들어갔는지 의심이 든다. 독일과는 대조적이다.
    파리로 자전거를 가지고 갈 수 있는 방법은 4번 갈아타고 가는 9시간 걸리는 방법이 있는데 하루에 점심 때 한 번 밖에 없었다.
    오늘은 아무리 빨리 민박집에 돌아간다고 해도 타기는 힘들 것 같아 느긋하게 시내를 돌아보고 내일 일찍 나와 파리로 이동하기로 결정했다.
    파리까지 직행은 5시간 정도 걸리는 데 자전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9시간 걸리는 것 까지는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거의 한시간 간격으로 기차를 갈아타야 하기 때문에 잠을 잘 수도 없고 멍하니 음악을 듣거나 그냥 생각하는 것도 고역이다.
    뭐, 나름대로 매력은 있다. 엄청난 스피드로 달리는 기차 차창 밖을 보면서 자전거로 이 길을 왔었다면 며칠이 걸렸겠지 하고 몸서리를 치기도 한다.

    비가 너무 많이 쏟아진다. 신발 속이 다 젖어 찝찝하지만 그렇다고 벗을 수도 없는 노릇이고… 나이롱 바지를 입고올 걸 그랬다.
    자전거를 유료 보관소에 맡기고 걸어서 섹스뮤지엄에 갔다. 그저 볼거리를 위해서 야한 사진들을 걸어 놓고 몇가지 장치를 해놓았는데, 그다지 흥미롭진 않았다.
    다 아는 것이기 때문에… 푸하하!

    비를 맞고 돌아다녀서인지 몸이 이상했다. 비가 조금 그쳐 가랑비가 내리는데 운하들과 시내 도로를 따라 조금 걸어다녔다.
    다시 역에 돌아와 자전거를 찾고, 다행히도 비가 덜 오는 틈을 타 민박집으로 돌아왔다. 기차로 두 정거장이기 때문에 자전거로도 그리 멀진 않았다. 약 3-40분 정도.
    자전거의 도시 답게 이 곳은, 보행자 신호와 자전거 신호가 따로 있고 자전거 신호가 파란 불일 때 보행자 신호는 빨간 불일 수도 있다. 자전거용 표지판도 따로 있어서, 자기가 가고 싶은 구역으로 가려면 자전거 표지판만 따라가면 된다.
    우리나라의 경우에는 거의 인도가 좁고 차도가 넓어지는데 여긴 길이 충분히 여유가 있고 자전거 전용 도로가 매우 잘 되있다. 민박집 아주머니 말로는 자전거랑 차랑 사고가 날 경우 무조건 차 과실로 처리된다고 한다.

    민박집에서는 점심, 저녁은 주지 않기 때문에 민박집 근처 슈퍼에서 파스타, 빵, 우유 이런 걸 사가지고 들어갔다.
    파스타를 데워달라고 말씀드렸더니 아주머니가 아예 밥이랑 김치랑 상을 차려주셨다. 감사합니다!
    점심을 넉넉히 먹고 스팀에 신발과 바지와 양말을 말리면서 잠시 잠을 청했는데, 피곤했는지 저녁 때가 되서야 일어났다. 아무래도 비를 맞은게 문제가 있는 것 같다.
    시간이 벌써 10월로 접어들고 있는데, 나는 여름옷 밖에 준비하질 않았으니 어찌 멍청하지 않다고 할 수 있으리요. 그나마 준비해온 긴팔티와 프랑크푸르트 민박 아주머니가 주신 스웨터 헌 옷이 많이 도움이 된다. 오늘은 비옷을 입고 나가느라 스웨터를 안입었었거든…

    잠시 앉아 있으니 저녁에 떡볶이를 했다고 또 차려주신다. 또 감사합니다!
    많이 먹고 힘내야지.
    여러모로 날씨가 나를 도와주지 않는다. 여행 초기에는 너무 더워서 과소비하게 만들고 살을 태우더니. 이젠 비를 내려 오도가도 못하게 만들다니..
    .
    푹 쉬고 내일은 또 하루 종일 기차를 타련다. 기차 타면 비는 상관 없으니까!

     
  • ukits 2004/09/29 17:49 PM 고유주소 | 댓글달기  

    17. 파리 

    diary – 17. Paris

    2004년 09월 27일 00:25

    24일, 하루 종일 기차를 타다.
    암스테르담 숙소, 평소와 같이 밥을 먹고 짐을 쌌다. 파리로 가는 기차시간이 12시라 여유가 좀 있었다.
    날씨가 좋으면 암스테르담 역 까지 자전거를 타고 가려 했는데, 날씨가 좋다가 막상 출발할 시간이 되자 비가 오기 시작했다. 타이밍도 좋지… 하는 수 없이 중앙역까지 가는 기차를 탔다.
    자전거 표를 미리 끊어 놓길 정말 잘했다. 안그랬으면 또 몇시간 씩 기다려 표를 사야했을 텐데.
    시간 여유가 있어 집에 전화를 하려고 보니 내가 사용하는 전화카드의 네덜란드 접속번호가 틀리다고 나온다. 민박집이었다면 물어서라도 해보겠는데 전혀 전화를 할 수가 없었다. 생각해보니 네덜란드에 와서 이틀이나 있으면서도 전화를 한통화도 안했구나…
    전화란게 좀 그렇다. 전화해야지 생각할 때는 전화기가 고장나거나 접속 번호가 틀리고, 또 돌아다니다 보면 한국 시간이 새벽이고. 변명이다. 내가 전화할 의지가 없나 자책을 해본다. 그건 또 아닌데…

    기차는 네덜란드를 벗어나 벨기에를 경유해 프랑스 국경의 역에 도착했다. 오후 5시가 넘었는데 한국 시간은 12시가 넘은 시간이었지만 집에 전화 드린지 너무 오래되어 수화기를 들었다.
    잠에서 깨신 부모님 목소리라도 들어서 다행이다.

    싸가지 없는 프랑스 놈들.
    어제 산 자전거 티켓은 프랑스 국경까지만이고 프랑스 내에서 다시 자전거용 티켓을 사야한다고 암스테르담에서 말 했었다. 줄을 서 기다려서 자전거 표를 사려하니 No pay 하고 하는 것이었다. 나는 속으로 ‘와 프랑스는 정말 자전거 정책이 잘되어있구나’라고 생각했는데 웬걸, 아예 자전거 칸이 없었다. 차에 아예 장애인 칸 조차 없었다.

    지금까지의 나라와는 다르게 여기 프랑스 역은 플랫폼이 정해져 있는 게 아니고 열차가 도착하는 순서대로 빈 플랫폼으로 들어오는 식으로 되어있다. 그래서 출발 20여분 전까지는 전광판만 쳐다보고 있어야 했다.
    막상 차를 타러가 자전거 칸을 찾으니 자전거 칸이 없었다. 열차 승무원한테 자전거 칸이 어디 있냐고 영어로 물어보았다. 근데 이 씨x새x가 프랑스어로 뭐라고 짜증내면서 지껄이는 것이었다. 그래도 영어는 바디 랭귀지 다음으로 만국 공통어이고 설마 모른다고 해도 성의를 가지고 단어나 몸짓으로라도 알려주는게 보통인데, 우리의 친구 달팽이를 드시는 이 나라 아름다운 새x들은 자존심 때문인지 머리에 똥이 차서인지는 몰라도 그걸 받아들이지 않는다. 말이 안통하니 내가 자전거를 가리키면서 타야한다고 하니 계속 모르겠다는 행동만 하는 것이었다. 개새x…
    욕을 많이 썼지만 저런 표현으로도 모자라다. 프랑스가 또 첫인상을 버려놓네…
    하는 수 없이 열차 제일 앞쪽으로 가 통로에 자전거를 들고 서 있을 수 밖에 없었다. 이 열차는 사람들이 아주 많이 타서 통로, 계단 까지 사람들이 꽉꽉 차있었는데 자전거를 들고 타자니 나도 미안하고 그 사람들도 불편하고 그랬다.
    내가 다시 갈아타야 하는 역은 3 정거장인데 1시간이 걸렸다. 땅덩어리가 넓긴 넓나보다.
    서류가방을 든 오피스맨에게 영어로 내리는 역을 물어봤는데 영어를 못한다. 옆에서 보다못한 흑인이 Next 라고 짧게 대답해 줬다. 이 나라 사람들은 도데체 뭐야.
    역시 다시 갈아탄 기차에도 자전거 칸이 따로 없어 복도에 묶어 놓고 객실에 앉아서 갔다. 다행히 사람이 별로 없어서…

    꽉찬 호스텔, 민박까지 야간 질주.
    해가 떨어지고 한참 있고서야 파리 북역에 도착했다. 숙소를 어떻게 잡을 것인지 고민을 많이 했다. 한인 숙소는 다들 시내의 관광지들과는 먼 거리에 있고, 호스텔은 이제 믿음이 잘 가지 않았다.
    그래서 아침을 주지 않는 대신 최저가 1박에 14?? 하는 인근 호스텔에 들려 성사되지 않는다면, 교외로 나가더라도 민박에 들어가기로 했다.
    역시 GPS의 도움으로 그 호스텔을 찾는는 성공 했으나 아쉽게도 Full 이었다. 비수기인데도 여행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구나.

    수신자 부담 전화에 상당히 큰 규모를 가진 민박집을 찾아나섰다. 간혹 GPS의 도움을 받으며 거의 두시간 만에 찾아갈 수 있었다. 거리도 거리였지만 큰 직선 도로를 찾지 못해 해멘 시간이 많았거든…

    세상엔 고수들이 많았다.
    그래도 난 나름대로 자전거를 가지고 유럽을 여행하는 것에 우쭐해 하고 있었는데, 나를 맞이하는 민박집 Staff 는 한국에서 시베리아 횡단 열차를 타고와 나처럼 기차를 타지 않고 자전거로만 유럽을 여행한 분이었다. 하루에 먹을 거 3?? 씩 썼다고 한다. 또 이야기를 나누던 중에 아예 1년을 자전거를 타고 이집트 까지 갔다가 다시 돌아오는 짓(?)을 한 분도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정말 대단하다…
    향수와 피로를 핑계로 일정을 줄이고 기차를 타게된 나로서는 부끄러울 수밖에 없었다.
    그래도, 정말 그렇게 여행하는 사람들은 어떤 방법으로 하는지 궁금했었는데 여러가지를 물어봐서 알아낼 수 있었다.
    텐트 필수, 자전거 가방 필수 등…
    나도 처음 부터 그렇게 계획했더라면 어땠을까 생각을 해보았다. 아쉬움이 많이 남는다.

    25일, 파리 시내로 출퇴근.
    자전거로 와보니 의외로 먼 거리다. 숙소가 있는 이곳은 지하철 역에서 3분 거리지만 메트로(지하철) 종점이거든. 도보 여행자에겐 종점이던 아니던 상관이 없는 거지만 자전거로 나가야 하는 나는 거리가 치명적일 수 밖에 없다. 별 수 없다.
    다녀오겠습니다!

    자전거로 한시간 여를 달려 파리 중심부를 흐르는 세느강을 찾았다. 휴~
    운이 좋게 바로 노틀담 성당 앞이다. 이젠… 아 노틀담에 꼽추에 나오는 그 노틀담-. 이런 생각 뿐. 여행 시작 때 부터 지겹게 봐왔던 교회 건물들에 별다른 감흥이 없다.

    오늘 당장 급한건 런던으로 들어갈 버스표와 쿠셋이라고 부르는 니스행 침대열차 표를 예매하는 것이었다. 열차 표는 파리 시내에 각 방향에 있는 기차역 아무곳에서나 사면 되지만, 버스터미널은 내가 온 반대방향의 외곽에 있었다.

    군악대, 의장대 사열, 우리가 낫다.
    터미널을 찾아가던 중 바스티유 광장 근처를 지나다 악단의 연주소리가 들렸다. 생각보다 이런 음악소리에 은근히 관심이 쏠리게 된다는 걸 느낀다. 광장에서 군악대와 의장대가 사열을 하고 있었는데, 의장대 시범을 보고 웃지 않을 수 없었다.
    이들은 주로 줄을 맞춰 이동하거나, 서로 엇갈리면서 걸어가면서도 부딪히지 않는 동작을 주로 보여줬는데, 우리나라 해병대(다른 군도 다 마찬가지일 것이다) 의장대는 줄맞히며 걷는 것은 기본이고 거기에 총을 쉴새 없이 돌리고 있지 않는가.
    박수를 쳐주었지만,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그 사실에 어깨가 으쓱했다. 여기 있는 사람들한테 한국 의장대 시범을 한번 보여주고 싶군. ^^

    버스터미널을 어렵게 찾아갔다. 진짜 멀다, 으-. 프랑스를 떠나는 버스를 타러 여기를 한 번 더 와야 한다.
    티켓을 사는데 그 전 다른 나라에서는 말이 그래도 통하니까 그냥 말로 하면 됬었는데 어제 역에서 처럼 말이 또 안통할 것 같아. 목적지와 날짜, 나이, 짐 개수를 적어서 창구에 보여주었다. 훨씬 수월하게 예약 할 수 있었다. 진작에 그럴걸… 비교적 저렴한 가격에 도버 해협을 횡단하는 표를 구했다. 49??. –; 그래도 기차나 비행기보다는 싼 가격이다.

    오늘은 외곽에 나왔으니 외곽의 볼거리를 둘러보고 내일은 중심가를 돌아보자.
    몽마르뜨 언덕에 오르자 파리 시내가 한눈에 들어왔다. 올라가기 무쟈게 힘들다.

    여기서 한 흑인을 만났는데 나를 부르더니 손가락을 고리로 만들어보라고 하고선 거기에 실을 걸고 빨간 파란 흰 실을 꼬기 시작했다. 밸라도 친한척 말을 걸면서 자기도 한국에 가봤다는 둥 실을 멋지게 꼬더니 팔목에 걸어주고는 원래 10?堧琯? 한국인이라 5?嚥? 해준다면서 돈을 내란다. ㅋㅋ 어이가 없었다. 그래도 실 예쁘게 꼬아줘서 돈 없으니까 1.5?? 만 가져라 하고 줬다. 그랬더니 ‘안녕’하고는 돌아간다.
    여행 와서 누가 친한 척 부르거나 (주로 흑인) 동의도 없이 뭔가를 시작하면 얼른 싫다고 하는게 좋을 듯 하다. 또 마음이 약해서 막상 다 해줬는데 돈 안주고 가라 할 수도 없는 거고… 저런 장사도 입심이 좋고 재주가 있어야 할 수 있겠구나 생각을 헀다. 일본놈 만나면 ‘사요나라’, ‘나도 도쿄에 가봤다’, 짱깨 만나면 ‘니하오마’, ‘베이징 가봤다’ 등등. 각 나라에 대해서 잘 알고 있어야 될테니까…

    내일 프랑스 저 남쪽 끝의 니스에 다녀오려고 역에 들렸다. 최근에 다녀온 사람들 말을 들어보니 아직은 수영 할만 하다고 한다.
    내가 니스에 가고 싶은 이유는 별거 아니다. 그냥 내가 좋아하는 노래에 나오기 때문에…

    이번에도 창구 직원에게 출발지, 도착지, 시간 등을 적어서 주었다. 다행히 그 창 구 직원은 영어를 잘 했다. 니스 침대칸(쿠셋) 왕복 요금이 72?? 가 나왔다. 깜짝 놀라 물어보니, 나는 왕복을 의미하고 ‘2 ticket’ 이라고 말했는데, 그걸 왕복 2명 분으로 알아먹은 것이었다.
    내가 그 사람이 말 하는 걸 듣지 않고 계속 내가 침대칸이다, 밤에 가야한다. 이런 소리만 하니까 좀 들으라고 내게 충고를 했다. 내가 영어가 서툴다고 말을 하니, 영어를 못하는게 아니라 너는 내 말을 듣지를 않고 있지 않느냐고 하는 것이었다. 많이 충격을 받았다. 그랬구나 난 내가 원하는 것만 말 할 줄 알았지. 상대방이 내가 예상 못했던 말을 했을 때 난 그 말을 흘려 들어버리고 전혀 알아듣지도 못하고 있었구나. 그런 충고를 해준게 정말 고마웠다.

    나폴레옹이 루브르 앞에 개선문을 만들었더니 작다고 다시 만들라 해서 크게 만들었다는 개선문을 보고 라데팡스 지역의 신 개선문을 보고 왔다.

    라데팡스는 전선이나 시설들이 모두 지하에 있고, 지상에는 멋진 디자인의 빌딩들과 공원들만 있는 미래형 도심지인데 여기에 현대적인 감각으로 만들어진 신 개선문이 있다. 또 공사중이다. 어딜 가나 공사중이지 않은 문화제가 없다는 생각을 했다. 성수기가 지나서 다들 공사에 들어간건지…

    날이 이미 저물어 내친김에 에펠탑 야경까지 구경했다. 9시 정각이 되니 에펠탑의 작은 전구들이 반짝이고 사람들이 탄성을 자아냈다. 나는 10, 11시에 한다는 불꽃놀이가 기대되서 이슬비가 내리는 그 추운날 비옷 하나로 10시 까지 한시간을 버텼더니 10시에 일어난 일도 9시에 일어난 일과 같았다. 탑이 반짝이고 사람들이 탄성을 자아내고… –;

    이번엔 노틀담 성당에서 숙소까지 한시간에 끊었다. 길을 덜 헤맸기 때문이 었다.

    숙소에 돌아와 동갑내기 룸메이트들과 여행 이야기를 나누었다. 다들 내 나이대 사람들이 많다.
    늦게까지 이야기를 나누다, 배고픈 마음에 주방을 습격하여 떡볶이와 밥을 탈취해 먹었다. 어찌나 맛있던지… 물론 허락 하에 먹은 것이었다. ^^

    몸이 으슬으슬 한게 엇그제부터 조금씩 비를 맞아 타격이 있는 듯 싶었다. 갈수록 의욕도 떨어지고 하길래, 내일은 활기차게 시작해보자 하는 마음에 감기약을 두알 먹고 잠을 청했다.

    26일, 진정한 여행은 마음의 안정이 아닐까
    파리에 온 후론 잠 자는 시간도 늦어지고 아침에 일찍 일어나지 못했다. 아침먹으라는 말에 밥을 꾸역꾸역 먹고, 민박집 인터넷이 안된다길래 고치는 걸 도와줬다.
    속빈 강정이라는 생각이 들지만 우리나라가 인터넷은 따라올 나라가 없을 것이다. 어느 나라를 가도 속도는 느리고 설비도 그저 그렇다. 결국 엉성하게 되다 안되다 해놓고 빠져나왔다.

    아예 점심까지 먹고는 느릿느릿 시내로 자전거를 굴려 루브르 박물관에 도착했다.
    이 박물관에 있는 전시물을 한 개당 30초씩만 봐도 일주일이 넘게 걸린다고 한다.
    나는 들어가서 속보로 걸으면서 봤는데 반도 못 보고 폐관시간이 되서 쫒겨나고 말았다. –;

    여행이라고 하면 휴식을 취하고 마음의 안정을 찾기 위해 하는 것인데 이렇게 단지 왔기 때문에 보고가야 한다는 압박에 시간에 쫒기고 허둥지둥 대는 건 잘못됐다는 고뇌에 빠졌다.

    신기하게도 루브르 박물관 유리 피라미드에서부터 카루젤 개선문, 오벨리스크, 개선문 그리고 저 멀리 라데팡스의 신 개선문까지 모두가 일직선 상에 있다.

    또 카루젤 개선문 위에는 전에 들렸던 베네치아에서 본 황금 말 네마리를 전쟁에서 이기고 가져와 달았는데, 다시 전쟁에서 지는 바람에 되돌려주고 다른걸 올려 놓았단다. 역사의 문화제들이 로마의 유물들처럼 이렇게 연관이 되 있다는게 정말 신기하다.

    여기 파리의 거리 악사들은 한층 업그레이드 되어 앰프를 가지고 다니면서 배경음악을 깐다. –; 그래도 흥겹게 연주하는 모습이 여전히 보기 좋다.

    현재 시간 7:40. 숙소에서 저녁은 8시 부터 먹을 수 있다. 저녁 값을 아끼기 위해 주린 배를 부여잡고(!) 필사적으로 페달을 굴렸다. 첫날 두시간 걸렸던 길을 25분만에 주파. –; 이게 먹고 살아야 겠다는 의지의 힘인가…

    밥을 먹고 휴게실에서 인터넷을 고치며 비디오를 보았다. 단체상영.
    민박 규모가 크다보니까 몇십일 씩 장기 투숙하는 분들도 계시고 해서 분위기가 화기애애하다.
    어쩌다가 한의원에서 시술한다는 10년 묵은 귓밥 꺼내기 이야기가 나왔는데 종이 대롱에 촛농을 뭍혀 귀에 대고 불을 붙이면 공기의 대류 현상에 의해 귓밥이 빨려 올라온다는 것이었다.
    해보니 정말 신기하게도 엄청난 양의 귓밥이 대롱에 저장되는 것이었다.
    이건 직접 보여줘야 한다. 시술 받고 싶은 사람들은 개인적으로 상담 바란다. 한의원에서 최저 3만원짜리 시술이다. ^^
    ‘여행의 묘미란 이렇게 새로운 것들을 경험하는데 있는게 아니냐’고 농담삼아 말했다.

    다섯 명의 스물 다섯 남정내가 맥주도 한잔씩 하며 이야기를 나누다 잠자리에 들었다. 일정이 같다면 내일도 한잔 하자고 했는데 아쉽게도 내일은 다들 각자의 길로 가야만 한다.

    난 밀린 일기를 늦게까지 쓰고 잔다…
    돈이 떨어졌다. 귀국 해야지.

    28일, 가자 니스로!
    그래도 남쪽 지방인 니스는 아직 따뜻하다고 한다. 파리는 비까지 오는 바람에 많이 춥다.
    아침에 체크아웃을 하고 빨래를 해서 널어 놓고 간단한 짐만 챙겨 숙소를 나섰다. 자전거와 베낭은 다시 숙소에 돌아올거기 때문에 맡겨놓았다. 메트로(지하철)을 타고 일단 항공사로 향했다.
    하필이면 한국은 추석연휴기간이라 비행 스케쥴을 담당 여행사에 바꿔달라고 요청할 수가 없어 직접 싱가폴항공사에 찾아가기로 한 것이다.
    운이 없게도 런던발 싱가폴행 비행기가 내가 생각한 10월 5일에는 만원이었다. 일단 그나마 가장 빠른 7일 표로 예약하고, 수시로 전화해 예약취소된 좌석을 찾으라고 친절히 알려주었다.
    으-. 어쩌면 영국에서는 여유있게(?) 시간을 보낼 수 있겠구나. –;

    우연히 얻은 지하철 표를 아끼기 위해 니스행 야간열차가 출발하는 역까지 무작정 걸어갔다. 대기소에서 사업구상도 하고 그림도 그리며 무료한 시간을 보내다 기차를 탔다.
    쿠셋이라는 침대칸인데 방 하나에 3층으으로 침대가 6개나 있고 혼숙이다. –; 같이 방을 쓰는 사람하고 친해져 보려했는데 다들 ‘우리에 친구 당팽이를 먹는’ 프랑스인이다, 망할…
    내일 아침이면 니스에 도착해 있겠지…

     
  • ukits 2004/09/22 16:40 PM 고유주소 | 댓글달기  

    15. 프랑크푸르트 

    diary – 15. Frankfurt

    2004년 09월 20일 월

    어제의 아펠바인 독한 버젼 때문에 깼다가 다시 잔 것이 늦잠이 되버렸다.
    아침을 먹고 브루거 할아버지와 디텐하임에서 우임까지 강변 자전거 도로를 따라 달려왔다. 우임에서 프랑크프루트까지 가는 기차를 타기 위해서이다. 할아버지는 나를 위해 회사 일도 땡땡이 치고 나와주었다. 물과 나무가 있는 정말 아름다운 길을 마주달리며 이야기를 나누었다.

    나중에서야 우임이라는 도시가 아인스타인의 고향이라는 사실을 알았다. 광장에 E=mc^2 라는 모양의 구조물이 있었거든…
    높은 교회의 종탑에 올라가 경치를 감상하고(브루거 할아버지는 약간의 고소공포증이 있엇다 ㅎㅎ), 스파게티를 먹었다.

    기차 시간표를 뽑아보니 자전거 때문에 3, 4번이나 갈아타야 하는 것 밖에 프랑크프루트로 갈 방법이 없었다. 하는 수 없지. 이제 기차를 갈아차는 것도 제법 잘 한다. ^^

    아쉽지만 할아버지와 작별을 했다. 이틀동안 편안 잠자리와 맛있는 음식을 준데 진심으로 감사드렸다.
    할아버지는 여행을 무지 좋아해서 여러나라를 돌아다녔는데 내년 즈음에 한국에도 갈테니 같이 시간을 보내자고 했다.
    흠. 그들을 맞이하려면 나도 영어 공부, 독일어 공부를 더 열심히 하고, 한국에 대해서도 더 많이 알아놔야겠다…
    전에도 생각했었지만 한국인인 내가 외국사람들 보다 오히려 한국에 대해서 모르고 있는 걸 느꼈기 때문이다.
    여행 중에 정말 멋진 인연을 만든 것 같아 기분이 좋다.

    열차에서 도중에 자면 역을 지나쳐버리기 때문에 자지 않으려고 음악을 들었다. 용량 제한 때문에 듀엣곡 몇 곡만 계속 반복해서 들었지만 여전히 좋은 노래들이다.

    여기 유럽의 기차는 자전거와 장애인 칸이 일반 객실과 따로 있는데, 이제는 자전거를 두고 객실 칸으로 가는게 귀찮아 그냥 자전거 옆에 앉아있는다.

    내가 어떻게든 혼자 사진을 찍어보고자 반대편에 사진기를 놓고 돌아와 폼 잡는 행위(!)를 계속 하고 있자, 객실칸에서 보다 못한 아저씨가 와서는 찍어주겠다고 했다. –;
    (앨범의 기차칸 사진 참조, 좀 흔들렸다.)
    싱가폴 아내와 오스트레일리아에 산다는 아저씨는 대한항공 스탑오버로 오스트레일리아로 돌아가는데 싸고 좋다고 이야기를 걸어왔다.
    동양적으로 생긴 두 딸이 있었는데 어찌나 귀엽던지…
    그렇게 서서 아저씨 목적지까지 이야기를 나눴다.
    사람이란게… 그렇게 작은 것을 공유하는 것으로도 쉽게 마음을 열고 이야기를 할 수 있구나.

    프랑크프루트. 일부러 이번엔 작은 민박집을 골랐다. 큰 곳은 오히려 사람들에게 소홀할 수가 있기 때문에.
    프랑크프루트가 큰 도시라 그런지 종착역 프랑크프루트 중앙역 두 정거장 전에서 내려야 민박집과 가까웠다. 같은 역 이름을 보고 내릴까 말까 망설이다가 한 정거장을 더 가서야 내려서 다시 한 정거장을 돌아왔다.
    방이 4개 뿐인 작고 편한 민박집이었다.다행히도 어제 손님이 다 빠져나가고 오늘은 나랑 동갑인 여자애 1명과 나뿐이었다.
    여행 후 처음으로 라면을 먹었다. 어찌나 맛있던지 어디로 들어갔는지를 모르겠다.

    기분이 멍하다. 이젠 여행의 설레임이나 들뜬 분위기는 다 가라앉았고, 단지 향수만이 내 가슴을 채우고 있을 뿐이다.
    남은 기간 동안 더 좋은 기억을 만들고 앞으로의 내 인생에 도움이 될만한 결론을 얻어야겠다.

    2004년 09월 21일 화

    일찍 일어나 씻고 아침을 먹었다. 집에 가서도 이 패턴이 유지된다면 정말 좋겠다.
    전문적으로 민박을 하는 집이 아니라 아침은 빵이었다. 그래도 마음 편하게 맛있게 먹었다.

    어제 여기서 같이 잔 여학생과 같이 프랑크프루트를 돌아보기로 했다.
    나는 내가 늦으막한 나이에 방황하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다들 이맘때쯤 자기의 진로와 미래에 대해 고민하나 보다. 얘도 유학할 독일의 신학교를 미리 단체로 견학왔다가 나머지 일정을 혼자 여행하려하고 있는데, 신학 공부를 계속할 것인지, 그렇다면 유학을 할 것인지, 한국에 남을 것인지 여러갈래의 기로에서 고민하고 있었다. 내가 생각해도 어려운 결정일 듯 하다.
    나도 공부와 일과 사업(이건 좀 힘들다) 사이에서 갈등하고 있지만 아직 결론을 내릴 수가 없다.
    어쨌든 인생의 갈림길에서 아직은 아무 생각 없는 두 사람이 아무 생각 없이 프랑크프루트를 돌아보았다.

    괴테의 생가를 둘러보고, 볼 것 없는 대성당을 보고 그래도 배운 것이 도둑질이라고 수많은 박물관 중에 통신 박물관을 관람했다. 신기한 기계식 교환기. 전화기로 만든 양…

    아펠바인 익스프레스라고 사과로 만든 와인인 아펠바인 한 잔을 주고 시내투어를 하는 버스가 있다고 해서 타러 갔는데 오늘은 운행을 안하는 것 같았다.
    성질 나서 숙소로 돌아오는 길에 슈퍼에서 저녁으로 먹을 빵과 함께 아펠바인 한병을 샀다. 0.99?? 겁나 싸다.

    하지만 맛은 그 유명세에 비해 별로였다. 가이드 북의 술 소개에 벌써 두번이나 속았다. 그리스에서 우조에 속고, 독일에서 아펠바인에 속고… 그리고 피렌체 투스카나 와인도 솔직히 별로였다.
    내가 술하고 잘 안 맞나? 술은 역시 생맥주와 소주가 최고다. 가끔은 막걸리에 바카디 같은 것도 좋고. ^^

    저녁에 숙소에 돌아오면 무척 한가해지지만 그 시간에 한국은 밤을 넘어 새벽으로 달리고 있다. 전화도 할 수 없고, MSN도 하는 사람도 없어서 더 적막하다. 오늘은 싸이까지 점검이네… 그게 더 좋은 걸까하는 생각도 한다.
    얼마전까지도 내 핸드폰 벨소리 환청에 시달렸다. 금방이라도 내 쌕 안에서 핸드폰이 울릴 것 같은…

    난 남의 상황에서 내 고민의 해답을 얻는다. 누군가가 자신의 상황을 내게 말하면 그냥 일반적으로 사람들이 생각하는 조언 아닌 조언을 해주곤 하지만 그 사람이 처한 상황은 내가 겪었을, 겪고 있을, 아니면 겪을 수도 있는 것들이기 때문에 내가 말하는 조언은 언제나 내 스스로에게 하는 충고가 된다.
    그리고 그런 조언은 누구나 잘 알지만 실천은 잘 안되는 그런 것들이 대부분이다.

    나중에 더 좋은 결과를 얻으려면 지금 더 노력하고 신중하고 최선을 다해야 한다는 것 쯤은 누구나 다 알지만, 그것이 힘들고 때로는 귀찮고 여건이 되지 않는다는 핑계를 대는 것이 더 쉽다.
    “용기 있는 자가 미인을 얻는다, 일찍 일어나는 새가 벌레를 잡는다.”
    지극히 맞는 말이지만 용기 있는 자, 일찍 일어나는 새가 되기는 힘들다.

    노력하자, 3류/2류 인생에 머무느냐 1류로 살아가느냐는 내가 마음 먹기에 달린 거다. 3류에 안주하려는 내 자신을 채찍질하자!

    내일은 암스테르담으로 출발이다.

     
  • ukits 2004/09/21 05:15 AM 고유주소 | 댓글달기  

    프랑크푸르트 

    여긴 프랑켄슈타인으로 유명한 프랑크푸르트.
    오랫만에 한국 민박집을 오니 멍 하다…
    성우야, 향연아, 좀만 기달려라잉~

     
  • ukits 2004/09/21 05:13 AM 고유주소 | 댓글달기  

    Here is Frankfrut 

    며칠만이지?
    한국 민박집을 찾아 오랫만에 인터넷을 쓸 수 있게 되었다.
    그동안 썼던 일기와 사진을 올리는데, 내가 여행 중 느꼈던 감정이 그대로 전해지지 않는 것 같아 아쉽다. 물론 나는 나중에 읽으면 기억이 나겠지만 말이다.

    지금 내 꼴은 말이 아니다.
    안그래도 푸석푸석한 머리는 계속 갈라지고, 햇빛에 그을린 팔과 다리는 허옇게 껍질이 일어난다. 살은 빠질 대로 빠져서 군대에 들어갈 때 몸무게였던 69kg 이 되었고, 앙상한 갈비뼈에 근육만 조금 나와있다.

    아, 빵만 먹으니까 방구만 나온다. –;

    나의 이 어설픈 자전거 여행이 다른 사람들의 배낭 여행과 다르고 더 멍청할 지라도 분명 얻는 건 정말 많다. 다른 여행자들이 얻는 걸 내가 못 얻었다면, 그들이 얻지 못하는 걸 나는 얻을 수 있기 때문에…

    우리나라가 그립고, 우리 말/글이 그립고, 사람이 그립고, 집이 그립다.

    조금만 기다려라! 내가 돌아간다!

     
  • ukits 2004/09/21 05:03 AM 고유주소 | 댓글달기  

    14. 디텐하임 

    diary – 14. Dietenheim

    2004년 09월 18일 (토) in 디텐하임

    오늘 아침은 조금 피곤함을 느꼈다. 별로 무리한 것도 없는데…
    문득 잠자리에 더 파고 들고 싶다는 생각이 들자 내가 벌써 이런 불편한 잠자리에 익숙해져버렸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고 보니 이 호스텔은 도미토리가 혼숙이다. 헉. 여기저기서 여자들이 부시시 일어난다. –; 암스테르담 호스텔이 혼숙이라해서 꼭 한번 가보고 싶었는데 그럴 필요가 없을 것 같다. 여자들을 의식 해야되니 별로 안 좋다.

    일찍 식당에 내려가 아침식사를 했다. 젊은 사람들이 많아서 식당이 학교 기숙사 분위기가 나는데, 음식들을 마음데로 가져다 먹을 수 있어서 좋았다. 체크아웃 준비를 했다. 자전거 복장을 입으면서 한숨이 절로 나온다. 또 자전거구나… 휴-.
    자전거를 타고 목적지에 도착했을 때의 그 정복감이나 성취감은 대단한 것이지만 막상 자전거에 올라서 출발하기가 무섭다. 오늘은 얼마나 헤메려나, 얼마나 달리려나…

    디텐하임은 엇그제 기차에서 만난 할아버지들이 사는 마을인데 마을 자체가 그리 크지 않은 시골이라 뮌헨에서 바로 가는 길이 없어 ‘ㄱ’자로 꺾어 가야한 한다. 도로의 이정표도 발견할 수가 없다. 할아버지들도 자전거로 오기 보다는 근처 큰 도시인 우임Ulm까지 기차로 와서 우임에서 디텐하임까지 25km정도만 자전거로 오라고 말했었다.
    하지만 난 고집을 부려 자전거를 선택했고… 그 댓가로 결국 도중에 세번이나 길을 잃었다.
    목적지가 프랑크프루트 같은 대도시라면 이탈리아에서 로마를 찾아갔듯이 이정표만 보고 따라가면 되는데, 이번엔 시골길을 달려야 하기 때문에 무척 힘들었다. 길도 꼬불꼬불하고…

    점심 때 쯤 어느 마을에 들러 중국식당을 발견하고 점심을 닭고기 볶음밥을 먹었다. 이것도 얼마만에 밥이냐… 상당히 맛있었다.
    주인집 아들이 단번에 한국인이냐고 알아본다. 내가 다시 물어봤다. 유럽사람들은 당연히 일본인인줄 알고, 일본인들도 일본인인줄 알고, 한국인들도 일본인인줄 아는데, 어찌 한국사람인줄 단번에 알아봤냐고. 일본사람은 키가 작은데 너는 키가 커서 한국 사람으로 보였다고 한다. 은근히 기분이 좋은걸-.

    두번이나 길을 잃었다. 한 마을은 3번이나 같은 길을 지나치기도 했다. 내가 마법진에 들어온 것 같았다. 나침반을 봐도 길을 못찾으니…
    그렇게 100km 정도 자전거로 가서 도착한 아우구스부르그Augsburg에서 결국 포기하고 기차를 탔다. 요금을 계산해 보니 아우구스부르그에서 우임까지 12.90, 뮌헨에서 우임까지 18.xx 겨우 0.5 정도 아끼려고 빡시게 오전을 허비했단 말인가… 허무감이 밀려온다.
    하지만 그 때라도 기차를 탄건 잘 한 일이었다. 기차를 안탔으면 할아버지들과 약속한 날짜에 도착하지 못할 뻔 했다.

    우임에서 디텐하임까지는 남쪽으로 약 25km. 우임역에 도착해 기차에서 내렸을 때는 해가 서쪽하늘을 벌써 붉게 물들이고 있었다. 무조건 남쪽으로 난 길로 자전거를 몰았다. 물어물어 찾아가다 보니 또 한치 앞도 구분할 수 없는 어둠이 찾아오고야 말았다. 내가 이탈리아 산 속에서 치를 떨었던 야간 주행. 두렵다.
    다행히 뮌헨에서 깨진 랜턴 전구를 새로 구입했기에 망정이지 아니면 또 중간에서 발이 묶일 뻔 했다. 깜깜한 도로에서 시험삼아 랜턴을 꺼보았는데 이탈리아 산을 넘을 때 처럼 아무것도 안보이는 것이었다. 정말 다행이다. 빛이 있다는 것에 감사했다.

    한 마을에서 낙엽을 치우고 있던 아저씨에게 길을 물어보았다. 무척 험상궂게 생긴 아저씨였다. 친히 집에 돌아가 지도를 가지고 나와 보면서 설명해준다. 독일 사람들은 정말 친절하다 라는 인상에 못을 박는다. 정말 아저씨가 알려준 것과 똑같이 길이 펼쳐졌다.
    바나나도 기차에서 다 먹어버리고 힘겹게 어두운 길을 가노라니 신세가 처량하게 느껴진다.

    어찌어찌 디텐하임에 도착해서 길가는 사람에게 브루거Brugger 할아버지 집을 물어 찾아갔다. 이미 10시가 다 된 시간이었는데, 문을 열고 나온 할아버지가 정말 반갑게 맞아주었다.
    뒤뜰에 있는 별채로 나를 안내해 잠자리를 마련해 주었다.
    할머니(정말 젊다)와 13살 작은 딸(할아버지인줄 알았는데 아저씨네)과 잠시 이야기를 나누었다.
    오후 내내 내가 오길 기다렸다고 한다. 그래서 엇그제 같이 있던 할아버지와 ‘그 놈이 안올란갑다’ 하고 포기하고 있었는데 저녁 늦게 와서 정말 반갑다고 했다. 늦게라도 찾아오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일기를 쓰는 지금은 원래 건물로 모두 돌아가고 별채에 혼자 있다.
    집이 궁궐같다. 별채에다가 자동 커튼에 차고, 정원 등등… 이 정도 능력이 되니 자전거를 여가로 즐기지 하는 생각도 들었다. 하지만 다 자기가 열심히 한 만큼 사는 것 아니겠어.
    또 하나의 목표가 생긴다. 이런 집 갖기.

    씻고 났더니 피곤이 몰려온다. 오늘도 즐거운 하루…

    2004년 09월 19일 (일) in 디텐하임

    처음 이곳에 오기 전에 생각하길 내 여정에 따라 지나가는 길에 하룻밤 신세지며 묶어가는 것으로 생각했었다. 할아버지들은 나를 귀찮은 손님 정도로 생각하지 않았다. 더구나 지금 내가 있는 곳은 정말 편하고 가족적인 분위기에 내가 전혀 방해도 안되고 한 한달 정도 있어도 티도 안날 만큼 큰 집에 부족한 것 없이 살고 있기 때문이다. 뭐, 그래서 염치는 없지만 하루만 더 묵기로 했다.

    무엇보다 이 집 사람들은 여유롭다. 일에 쫒기거나 급하지 않고, 주말마다 여가를 즐기고 평일에는 집을 가꾸고 청소하고 일찍 잠자리에 든다.

    부족함이 없어서 여유로운 것일까, 여유로워서 부족함이 없는 것일까.

    시리얼 , 빵, 케익, 과일, 야채, 우유, 쥬스 진수성찬에 아침을 배불리 먹었다. 안주인 할머니가 신경을 많이 쓴 것이 눈에 보인다.

    식사를 끝내고 근교로 두 할아버지와 함께 자전거를 타고 하이킹을 갔다.
    그림같은 독일 전원풍경을 달려 산길을 접어 들자 할아버지가 취미로 기르는 꿀벌집이 나왔다. 근처에 아카시아 꽃이 많아 좋은 꿀이 난다고 했다.

    숲길을 빠져나와 근처 레스토랑에서 차를 타고 온 할아버지 가족들과 점심을 먹었다. 물론 나는 얻어먹었다.
    메뉴판을 봐도 알아먹을 수가 없었지만 쌀이 그립다고 허니 스테이크에 라이스가 나오는 메뉴를 시켜주었다.

    돌아오는 길에 할아버지가 예전에 선수로 뛰었던 축구팀의 경기를 관람했다. 아쉽게도 졌다.

    집에 창고에는 빔프로젝터와 탁구대가 있는데, 탁구를 쳐서 할아버지, 할머니, 작은딸 이렇게 세명한테 모두 졌다. –;

    테이블에 둘러앉아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는데 딱 보면 잘 살 수 밖에 없다고 느껴진다.
    호탕한 성격에 여유가 넘치고, 운동도 잘하지, 정말 모든게 부러움의 대상이자 나의 목표로 설정되는 것 같다.
    작은 딸에게 우리나라 식으로 숫자를 읽는 법을 알려줬더니 매우 신기한 듯 계속 숫자를 만들어 보면서 좋아했다.

    원래는 내가 사진을 찍어 나중에 인화해서 보내주려고 했는데, 할아버지가 더 좋은 사진기를 가지고 있었다. –; 결국 내가 사진을 받기로 하고 주소를 다시 한번 알려주었다.

    사과로 만든 와인인 아펠바인 독한 버젼을 한 잔 먹었다.

    여행 이후에 최고로 편한 잠자리, 맛있는 음식에 가족적인 분위기를 느끼니 여행의 묘미가 이런 것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따지고 보면 운이 참 좋았던게지…

    단지 평범한 할아버지, 할머니 사는 집이겠거니 하고 찾아온 집이 자연을 사랑하고 여유롭게 삶을 즐기면서 살아가는 멋진 곳이라니.. 아마도 나는 평생의 목표를 이 브루거 할아버지에 맞춰야 하지않을까 싶다.

    내일 다시 프랑크프루트로 떠난다. 할아버지가 퓌센Fussen이나 하이델베르크Heidelberg가 좋다고 추천을 해주었는데, 이곳 디텐하임에서 이틀을 소비하며 많은 것을 구경했기 때문에 그냥 바로 프랑크프루트로 가기로 했다.
    내일도 함께 우임으로 가서 함께 관광을 하고 나를 환송해주겠다고 한다. 정말 몸둘 바를 모르겠다.

    뜨거운 물에 샤워, 독한 와인 한 잔, 따뜻한 오리털 이불… 집에 온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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