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 암스테르담
diary – 16. Amsterdam
프랑크프루트에서 일찍 나선 관계로 기차를 다섯번이나 갈아타고도 어두워지기 전에 암스테르담 중앙역에 도착할 수 있었다. 이제 기차를 갈아타는 것에도 익숙해졌다. 워낙 땅덩어리가 크기 때문에 한두시간 기차를 타는 건 잠시라고 느껴질 뿐이다.
출발할 때는 흐리던 날씨가 결국엔 비를 쏟아내리고 있다.
원래 숙소를 유스호스텔로 정하려 했는데 정작 도착하고 보니 뮌헨의 유스호스텔이 떠올라 선뜻 내키지가 않았다. 그 어수선했던 분위기…
궁여지책으로 한국 민박집을 알아보기로 하였다. 한국의 동생에게 전화를 걸었다. 전화를 안 받는다. –; 젠장. 한국 시간으로는 새벽 1시인데 벌써 자나?
하는 수 없이 저녁거리를 먹을 집을 찾을 겸 해서 비를 맞으며 암스테르담 중심가를 자전거로 돌아다녔다.
마침 1유로를 넣고 인터넷을 약 40분간 사용할 수 있는 인터넷카페를 발견하고 거기서 민박집을 검색해보았다.
한국어 윈도우가 아닌 곳에서는 한글 웹페이지를 검색하면 자동으로 한글을 볼 수 있도록 프로그램이 깔리지만 한글을 치기 위해서는 IME라는 것을 설치해야 한다. 근데 그건 재시작을 해야하고 재시작을 하면 시간이 날라가기 때문에 검색창에 영어로 amsterdam 이라고 쳐서 찾을 수 밖에…
다행히 민박집 카페가 검색되서 전화번호를 적어 나왔다. 엎친데 덮친 격으로 전화기는 모두 카드식 밖에 없었다.
가이드북에 나온 추천 중국식당에서 저녁을 먹고 그 집에서 양해를 구하고 전화를 쓰기로 했다. 근데 그 중국집이 예상보다 규모가 커 당황했다. 다행히 동전 공중전화기가 있어 민박집에 전화를 했다. 위치와 주소 등만 물어보는데도 0.40?? 가 떨어진다. 도둑놈들… 민박집 전화번호가 틀리거나 없어진 민박집이 아니라 다행이었다.
민박집은 중앙역에서 두 정거장 거리였다. 다시 비를 맞고 역으로 돌아가 디멘Diemen 이라는 곳으로 가서 GPS의 도움을 받아 민박집을 찾았다.
아주머니도 자세히 알려주지도 않았는데 찾아왔다고 신기해했다. GPS 여러모로 도움이 많이 된다.
여기 민박집은 그냥 가정집으로 아들, 딸들이 방학 때 한국에 갔을 때만 빈 방에 민박을 했던 곳인데 지금은 아들, 딸이 돌아와 있어 실질적으로 민박을 하고 있진 않았다. 그렇지만 손님방 하나가 남아서 거기서 잠을 잘 수 있게 되었다. 즉 자리가 하나인 민박집이란 말이다. 운이 좋았지. 짐을 푼 시간이 저녁 10시경.
암스테르담 밤거리를 구경하기 위해 다시 집을 나섰다. 주인 아주머니가 아예 열쇠까지 주시며 보고 오라고 하셨다.
박물관을 가기엔 늦은 시간이고 역 인근의 홍등가를 찾았다. 밤이라 그런지 많은 사람들이 있었다.
암스테르담은 마약, 마리화나나 매춘이 허용되는 곳으로 사람들이 그런 것에 대해 거리낌 없이 생각하고 있는 듯 보였다. 상당히 큰 영역의 그 구역에는 성인용품, 성인비디오 가게와 포르노를 상영하는 영화관이 있고, 매춘부들의 집이 골목골목에 위치하고 있는데, 신기하게도 구역별로 취향에 맞게 고를 수(?) 있게 되어있었다. 이 골목은 흑인, 저 골목은 러시아인, 이 골목은 뚱뚱이. 뚱뚱이들이 제일 엽기적이었다. 웃음이 나오지 않을 수 없었다. 저런 취향을 가진 사람들도 있겠지?
돌아다니는 사람 중에는 한국, 중국 아저씨들도 많았다. 이런 곳에서 아는체 할 수는 없지. –;
이런 문화적 차이에 많은 생각이 오갔다. 뉴스를 보니 우리나라는 청량리가 없어지고 한다는데… 이런 곳에서 일한다면 나부터도 나쁜 시선으로 보지만, 스스로 당당하게 행동하는 여성들을 보고 경멸보다는 존경심이 들었다.
근데 이런데 여자친구랑 오는 사람은 뭐냐고…
2004년 09월 24일 목
어제 늦게 도착하는 바람에 여행 안내소와 국제선 기차 예매소가 문을 다 닫는 바람에 오늘 일찍 나서서 정보를 얻기로 했다. 파리행 오후 티켓이 있다면 시내 구경후 민박집에 돌아가 바로 오늘 파리로 갈 생각이었다.
암스테르담은 열차 예매소가 국내선/국제선이 따로 있는데, 국제선에 비중을 많이 안 두고 있는 듯 했다. 9시면 이른 아침인데도 1시간정도 번호표를 들고 기다려야했다. 짜증이다…
암스테르담을 보고 있으면 이런 나라가 어떻게 선진국 대열에 들어갔는지 의심이 든다. 독일과는 대조적이다.
파리로 자전거를 가지고 갈 수 있는 방법은 4번 갈아타고 가는 9시간 걸리는 방법이 있는데 하루에 점심 때 한 번 밖에 없었다.
오늘은 아무리 빨리 민박집에 돌아간다고 해도 타기는 힘들 것 같아 느긋하게 시내를 돌아보고 내일 일찍 나와 파리로 이동하기로 결정했다.
파리까지 직행은 5시간 정도 걸리는 데 자전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9시간 걸리는 것 까지는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거의 한시간 간격으로 기차를 갈아타야 하기 때문에 잠을 잘 수도 없고 멍하니 음악을 듣거나 그냥 생각하는 것도 고역이다.
뭐, 나름대로 매력은 있다. 엄청난 스피드로 달리는 기차 차창 밖을 보면서 자전거로 이 길을 왔었다면 며칠이 걸렸겠지 하고 몸서리를 치기도 한다.
비가 너무 많이 쏟아진다. 신발 속이 다 젖어 찝찝하지만 그렇다고 벗을 수도 없는 노릇이고… 나이롱 바지를 입고올 걸 그랬다.
자전거를 유료 보관소에 맡기고 걸어서 섹스뮤지엄에 갔다. 그저 볼거리를 위해서 야한 사진들을 걸어 놓고 몇가지 장치를 해놓았는데, 그다지 흥미롭진 않았다.
다 아는 것이기 때문에… 푸하하!
비를 맞고 돌아다녀서인지 몸이 이상했다. 비가 조금 그쳐 가랑비가 내리는데 운하들과 시내 도로를 따라 조금 걸어다녔다.
다시 역에 돌아와 자전거를 찾고, 다행히도 비가 덜 오는 틈을 타 민박집으로 돌아왔다. 기차로 두 정거장이기 때문에 자전거로도 그리 멀진 않았다. 약 3-40분 정도.
자전거의 도시 답게 이 곳은, 보행자 신호와 자전거 신호가 따로 있고 자전거 신호가 파란 불일 때 보행자 신호는 빨간 불일 수도 있다. 자전거용 표지판도 따로 있어서, 자기가 가고 싶은 구역으로 가려면 자전거 표지판만 따라가면 된다.
우리나라의 경우에는 거의 인도가 좁고 차도가 넓어지는데 여긴 길이 충분히 여유가 있고 자전거 전용 도로가 매우 잘 되있다. 민박집 아주머니 말로는 자전거랑 차랑 사고가 날 경우 무조건 차 과실로 처리된다고 한다.
민박집에서는 점심, 저녁은 주지 않기 때문에 민박집 근처 슈퍼에서 파스타, 빵, 우유 이런 걸 사가지고 들어갔다.
파스타를 데워달라고 말씀드렸더니 아주머니가 아예 밥이랑 김치랑 상을 차려주셨다. 감사합니다!
점심을 넉넉히 먹고 스팀에 신발과 바지와 양말을 말리면서 잠시 잠을 청했는데, 피곤했는지 저녁 때가 되서야 일어났다. 아무래도 비를 맞은게 문제가 있는 것 같다.
시간이 벌써 10월로 접어들고 있는데, 나는 여름옷 밖에 준비하질 않았으니 어찌 멍청하지 않다고 할 수 있으리요. 그나마 준비해온 긴팔티와 프랑크푸르트 민박 아주머니가 주신 스웨터 헌 옷이 많이 도움이 된다. 오늘은 비옷을 입고 나가느라 스웨터를 안입었었거든…
잠시 앉아 있으니 저녁에 떡볶이를 했다고 또 차려주신다. 또 감사합니다!
많이 먹고 힘내야지.
여러모로 날씨가 나를 도와주지 않는다. 여행 초기에는 너무 더워서 과소비하게 만들고 살을 태우더니. 이젠 비를 내려 오도가도 못하게 만들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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푹 쉬고 내일은 또 하루 종일 기차를 타련다. 기차 타면 비는 상관 없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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