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5. 로마 가는 길
diary – 5. to Rome
2004년 9월 7일 20:32 D+6
스카우리 숙소
드디어 오늘부터는 자전거 행군이다. 8시가 조금 넘어 일어났는데, 유스호스텔의 부지런한 우리 방 사람들은 벌써 체크아웃 하거나 방을 나서 있었다. 부랴부랴 준비를 하고 자전거 복장으로 아침식사를 하러 내려갔다. 으… 또 그 빵 한 조각에 코코아.
여행 중 지금까지의 식사는 다 배고파서 먹기 보단 쓰러지지 않을려고 억지로 먹는 것이 대부분이다. 쌀밥과 김치와 육개장이 그립다. 한국에 돌아가면 육개장을 가장 사랑해주고 싶다.
빵이 맛이 없었지만 다행히 체크아웃하려고 가지고 내려온 가방에서 고추장을 꺼내 발라 먹었다. 그나마 먹을만 하군…
아침 부터 뜨거운 햇살이 내리쬐 출발 전 자전거를 잠시 손보는 그 순간에도 땀이 흘러 내린다.
유리에 비치는 내 자전거 복장에 잠시 반했다. –;
어제 이탈리아 지도를 구입하긴 했지만 축적이 큰 전도라 도시의 진입로 까지 자세히 나오진 않았다. 하는 수 없이 무작정 나침반이 가리키는 북쪽 길을 향해 페달을 밟았다. 처음이라 그런지 발이 상당히 가볍다.
작은 슈퍼마켓에 들려 도브 비누 하나와 햄을 샀다. 주인 아저씨에게 로마 까지 간다고 말하자 로마까지는 210km 라며 못들을 것을 들었다는 표정이다. 어쩔 수 있나…
내리쬐는 태양빛을 받으며 북쪽으로 북쪽으로 향했다. 로마가 큰 도시긴 하나보다. ROMA 라는 표지판이 나눠지는 길마다 보이니 방향을 잡기가 한결 수월하다.
자전거를 타고가다 배가 고프면 이미 끝이다. 다시 기운을 회복할 때 까지 기다리지 못하기 때문이다. 햄과 물을 계속해서 먹어가면서 오르막 내리막을 반복하다 보니 힘이들어 점점 평균 속도가 떨어지고, 속도계의 주행거리가 100km에 육박해 간다. 속도계가 약간의 오차가 있긴 하지만 다리가 매우 피로해지고 등에 짊어진 베낭의 무게 때문에 항문이 파열(?) 위기에 처했다.
정말 유럽은… 자전거로 횡단하기엔 무리인가 하는 회의감이 들었다. 그렇다면 이미 다녀온 사람들은 뭐지? 난 왜 다른 사람들 처럼 평범한 베낭여행을 생각하지 않은 거지? 특별하기란, 유별나기란 이렇게 힘든건가? 집 생각이 간절하다.
주유소 벤치에서 잠시 눈을 붙여 휴식을 취했다. 일어나 다시 좀 더 가보려고 힘을 냈지만, 속도가 처음만큼 나오질 않는다. 날은 어두워지는데 맞바람까지 속을 썩히니 더 이상 갈 맛이 나질 않았다. 가까운 도시에서 묵어 가려고 내려온 곳이 이곳 스카우리Scauri다.
자전거를 타고 지나가는 애들한테 손을 포개 볼에 같다 대면서 “Sleep” 이라고 말하니 알아듣고 “Follow me!” 한다. 어찌나 고맙던지…
10여분을 달려 도착한 2인실 숙소가 하룻밤에 무려 47유로. 아침 포함. 유스오스텔 3일 묶을 돈인데… 웃으며 사정해도 안 깎아 준다. 다른 숙소를 찾을 수 없는 마당에 어쩔 수 없었다.
덕분에 혼자 쓰는 큰 방에 TV도 틀어놓고 아무것도 안걸친 자연의 상태로 일기를 쓰고 있지만, 그저 여기가 집이었으면 좋겠다는 생각 뿐이다.
계획을 수정해야 겠다. 유레일이 허용하는 한 이용하면서 최대한 기차로 이용하고 한달 이내로 기간을 줄여서 정말 꼭 볼 것만 보고 돌아간다… 아직 재고의 여지가 있는 것이지만, 이런 무계획 적이고 미친 멍청한 여행을 계속 한다는 것이 오히려 정신 나간 짓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이다…
2004년 9월 8일 수요일 D+7
로마 한국인 민박
지금 나는 매우 기분이 업되어 있다. 이틀 내에 도착하는 것이 무리라 생각했던 로마에 입성했고, 밥과 김치를 배불리 먹었다. 솔직히 로마 관광은 지금 뒷전이다. 지금 이 기분을 즐기고 싶을 뿐…
여행 도중에는 그렇게 늦잠을 자지 않았다. 당연하지 일찍 자니까… 스카우리에서 6시가 되니 눈이 떠졌다. 근데, 일어나기가 싫었다. 좀 더 누워있다가 나도 모르게 TV를 켰다. 멍하니 보고 있노라니, TV라는 기계가 나를 나태하게 만들고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한국에 돌아가서도 TV 앞에 생각없이 앉는 걸 자제해야지.
역시 이곳에서도 아침은 커피와 빵, 각종 잼이다. 이런 빵은 지겹다. 고로케, 생크림 이런게 나와도 집어쳐라 할 판에… 하지만 어쩔 수 없이 다 먹었다. 이게 다 오늘 쓸 에너지다…
슈퍼에 들러 물 한 병을 사고 나왔는데, 자전거에 몸을 올리기가 두려웠다. 로마는 어제 내가 나폴리에서 여기까지 온 만큼 보다 더 많이 남아 있었다. 선택의 여지도 없이 페달을 밟았다.
어제의 실수를 만회하기 위해 몇가지 방법을 달리 했는데,
먼저 베낭을 뒤 짐받이로 내려 안장과 함께 고정시켰다. 전문가용이라고 산 짐받이가 전용 가방에 맞춰져있고 다른 짐을 올리기엔 너무 작아 베낭이 옆으로 자꾸 쓰러져서 타는 동안 내내 애를 먹었지만, 어제처럼 등에 맨 것 보다는 통풍도 잘되고 항문의 압박도 덜했다.
또 허벅지 아래 근육을 쓰지 않는 장거리 라이딩 주법(분명 이 주법은 원래 있는 주법일 테지만, 내가 스스로 알아냈기 때문에 저렇게 부르기로 하겠다)을 이용해 무리가 가는 허벅지 근육을 최대한 아끼기로 했다.
그리고 로마에 거의 다 와서 안 사실이지만 바나나가 스테미너에 짱이다.
어쨌든 그렇게 출발은 순조로웠다. 어제의 처음처럼 평균 시속 22km/h가 나왔다.
오늘은 141km가 처음으로 나온 로마 이정표였다. 한숨이 나왔다. 장거리 하이킹의 경우에 보통 하루에 100km 추천이고 광주 풍암 MTB 아저씨의 말로는 당일치기 200km 까지도 가능하다고 한다. 중간에 하루 묵어야 한다면 좋은 자리를 봐서 노숙을 할 까 생각을 했었다. 큰 도시가 아니라 숙박비가 쌀 거라 생각했는데 오히려 반대였기 때문에…
항문이 덜 아퍼서 그렇기도 하지만 자주 내려서 쉬지 않기로 했다. 두시간 타고 15-20분 쉬는 타이밍으로 달렸는데, 두번째 휴식시간에 점심으로 어제 남은 햄과 비스킷을 먹었다.
스카우리를 많이 벗어나 완만한 경사에 직선 주로가 이어지고 계속 달렸다. 나는 계속 북쪽을 향해 달리고 있었는데, 태양이 신기하게도 내 왼쪽에서만 계속 비췄다. 덕분에 내 왼 팔과 왼 다리만 익어버렸다. 베낭을 도중에 열기가 귀찮아 썬크림을 안 발랐더니 지금도 조금 따끔 거린다.
기운을 내려고 노래도 부르고, 미친 놈 처럼 고함도 치면서 달렸다. 나와 같은 방향으로 차가 쎄게 지나가면 기류의 영향으로 힘이 덜든다는 사실도 알아냈다. 특히나 대형 트레일러는. 그런 차들의 도움을 받아 거의 평균 속도를 계속 유지할 수 있었다.
세번째 쉴 때, 집에 전화를 드렸다. 시차도 있고, 이동 중에 연락드리기가 힘들어 오랫만에 전화하는 거였다. 자세한 여행 이야기도 드리지 못하고 끊었다. 또 한 사람과 전화를 하는데 왜 그리 서러운지…
다시 자전거를 타면서도 계속 울컥 눈물이 나올 것 같았다.
출발 후 로마까지 1/4 지점에서 슈퍼마켓을 발견했는데, 바나나가 땡기길래 3개를 샀다.
이곳은 슈퍼마켓하고 주유소 매점이나. PUB과 가격차이가 너무 많이 난다. 콜라 캔이 슈퍼마켓에서는 0.5유로 정도 하는데 비해 PUB 에서는 2유로 정도 한다. 물도 그렇고… 무조건 슈퍼에서 사면 되지 않느냐 하지만 슈퍼가 눈에 잘 안띈다. –;
어디선가 바나나를 먹으며 자전거를 탄다는 이야기를 들었는데 정말 신기하게도 체력이 많이 회복되는 느낌이었다. 로마에 거의 다 와가는 시점이기도 했지만 확실히 그때부터는 그 전보다 발 놀림이 빠르고 힘이 들어갔다.
그리고… 드디어 로마에 입성. 절로 입이 벌어졌다. 이 기분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로마 이정표 앞에서 기념촬영을 하였다.
도중에 경찰이 위험하니 도시 안쪽길로 가라고 해서 돌아오느라 시간을 허비하지 않았다면 더 일찍 도착했을 텐데…
테르미니역 주변에 한인 민박촌이 모여있다는 정보로 로마시내에서 GPS를 작동시켜 테르미니 역을 찾아갔다.
도시간 이동에서는 이정표가 있으니 그나마 GPS가 필요 없지만 표지판이 눈에 잘 들어오지 않는 도시 내에서 GPS는 정말 유익하다. 무리해서 장만해온 보람이 있다.
정확한 주소를 몰라 인근을 두리번 거리는데, 한국인 처럼 보이는 할머니와 꼬마 둘이 지나갔다. 추측대로 한국인이었고 운이 좋게도 민박을 운영하시는 분이었다. 할머니는 잠시 가던 길을 돌려 나를 민박집에 데려다 주셨다.
민박집 아주머니는 내가 도착하자 마자 밥을 한 양푼이나 내 주셨다. 김치에 고기 두가지 뿐이었지만 한 숟갈 한 숟갈 꿀 맛이었고 눈물이 핑 돌면서 입에서는 웃음이 떠나질 않았다. 9일만에 밥이다. 정신없이 물을 말아 3 사발을 해치우고 몸을 씻으니 여행에 대한 생각은 하나도 안나고 편안한 느낌이 들었다.
한인 민박의 특징은 또 인터넷을 편리하게 쓸 수 있다는 것이다.
그동안 밀린 사진과 여행기를 업로드 하였다.
솔직히 오늘 기분은 어제의 그 참담함 과는 상반된다. 먼 거리를 주파했다는 것에 자신감도 붙고, 좀 활기차진 듯 하다. 오늘 밤, 아니 로마에 머무는 동안은 좀 마음이 편할 것 같다.
내일은 로마 관광이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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