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3. 이탈리아 바리
diary – 3. Bari
거대한 블루스타 페리호에서 깜깜한 밤바다를 달리다 거센 바람을 맞으며 잠을 청했다. 거의 동이 틀 무렵에 잠에서 깨었는데, 긴팔 츄리닝을 입고 잤는데도 너무 추웠다. 하는 수없이 판쵸우의를 꺼내 덮었다. 침낭은 펼치면 넣기가 어렵기 때문에…
조금 지나자 승무원이 “바리! 바리!” 하면서 깨웠다. 드디어 이태리 도착이다!
배에서 썼던 물건들을 다시 싸고 부랴부랴 준비를 했다.
마사미는 블루스타 페리에서 연계로 제공하는 로마 행 할인 버스를 타겠다고 일찍 Reception 으로 떠났다. 배는 자전거를 분해하지 않고 실었기 때문에 바로 타고 항구로 내려올 수 있었다.
길치 변성욱이 길을 안 헤매면 안되지! 헤메이다 바리 기차역을 찾았다. 아침이 됐는데도 어째 거리가 한산하다 했더니 불행히도 오늘이 일요일인 것이다. 인포메이션도 문을 닫고 모든게 평화(?)롭기만 하다.
기차역 안의 인포메이션에 들어가니 커다란 등치의 아저씨가 바리의 지도랑 이탈리아의 철도 노선도를 복사해줬다. 덤덤한 표정에 그래도 신경 쓴 기색이 역력하다. 그런데 난 아직 “정말 고맙습니다. 이 은혜를 어떻게 갚아야 할지”라고 영어로도, 이탈리아어로도 할 줄 모른다. –;
원래 오늘부터 자전거로 이동할 계획이었으나. 기차가 날 유혹했다. 궂이 핑계를 대자면 갈 길에 산이 있었던 것이다.
내 의지는 이탈리아를 가로지르는 산에 의해 꺾여버렸다.
다시 역 인포메이션으로 가 나폴리행이 가능한지 물어보고, 15시 출발 유로스타를 구입했다. 유로스타는 유레일 패스가 있어도 추가 요금을 내야한다. 예약료인가 뭔가로…
어딜 가나 자전거가 문제다. 유로스타에는 분해해서 짐으로 싣고 갈 수 있다.
기차 시간 까지 많이 남아서, 바리 시내를 천천히 돌아보고자 자전거로 길을 나섰다. 왠 자전거 무리가 이곳저곳에 멈춰 투어를 하고 있는 게 보였다. 처음엔 그냥 웃으며 지나쳤는데 모퉁이를 돌자 다른 자전거 팀이 또 보였다.
가이드 북 어디선가 도시 내를 자전거로 관광하는 상품을 보았는데 그건가 싶어 꼬리로 따라 붙었다. 한 명을 붙잡고 물어보니 자기들 배에서 마련한 여행상품인데 따라가도 될른지는 리더에게 물어보라고 했다. 가이드로 보이는 맨 앞 사람에게 가서 한국에서 온 여행자인데 따라가도 되냐고 물어보니. 의외로 반기며 흔쾌히 승락했다.
그들을 따라 바리 시내를 돌다가 약 30km 거리인 torre a mare 해안까지 따라 갔는데, 팀리더들과 같이 앉아 젤라띠라는 아이스크림을 먹으며 이야기를 나누었다. 독일인인데도 영어를 유창하게 하고 대여섯명이서 나에게 관심을 갖고 친근하게 대해주었다.
이 사람들은 독일 AIDA라는 여행사에서 마련한 선박 팩키지 상품의 가이드들로 자기 손님들을 이꼴고 자신들이 정박한 항구를 소개하면서 돌아다니는데, 다들 자전거에 조예가 있어 근육이 우락부락하고 아주 활기차 보였다. 나는 정말 운 좋게 이들을 만난 것이다. 그렇지 않았다면 torre a mare에는 와보지도 못했겠지. 이게 가이드 투어의 장점이 아닌가 싶다.
그들을 따라서 바리 시내로 들어와 항구에 들어가서 그들과 헤어졌다. 내가 따라갔던 팀리더는 AIDA로고가 박힌 물통을 선뜻 건네주면서 기억해달라고 했다. 오히려 내가 감사해야지.
이 팀을 만난 것이 정말 기뻣다. 시간을 때우거나 그런 것 보다도 의미있는 무언가를 했다는 느낌이었다.
승차 두어시간 전, 역 인근 공원에 앉아 손톱도 깎고 한적한 시간을 보냈다. 그저 한숨만 나온다. 나와의 싸움은 온데간데 없고 현실과 타협하는 예전 그대로의 변성욱씨가 있을 뿐이다.
출발 30분전 역에 돌아와 자전거를 분해해 가방에 넣고 플랫폼에서 열차를 기다렸다. 열차는 이번이 처음이다. 유레일의 시작! 좀 어리버리 했다.
이탈리아는 그리스와는 틀리게 젊은 사람들이 이방인에게 친절하지가 않다. 영어도 잘 안통하고 자전거를 따로 싣는 곳이 없어 고생했는데 화장실 옆에 길고 큰 짐을 넣을 수 있는 칸들이 여러개 있었다. 그곳에 자전거를 넣고, 이탈리아를 횡단했다.
Caserta 에서 Napoli 로 가는 두량 짜리 시골열차로 갈아타고 나폴리에 도착했을 때는 해가 뉘였뉘였 지고 있었다.
역시 주차장 한켠에서 자전거를 조립하고 있으니 개를 안은 아저씨가 구경하길래 웃어주었다. 말이 안통하는 사람들에게 웃는 것 보다 좋은 인사는 없는 것 같다. 그 아저씨는 내가 자전거 조립하는 것을 도와주더니, 예전에는 자기도 자전거를 탔었는데 갈비뻐를 다쳐서 지금은 못탄다고 몸짓으로 이야기했다. 신기하게도 난 알아먹었다. 말은 통하지 않아도 이런 사람들은 언제나 고마운 사람들이다.
진가를 발휘하는 GPS
나폴리의 도로는 벽돌과 넓찍한 돌들로 되어 있는 곳이 많은데, 자전거에겐 많이 불편하다.
PDA에 GPS를 작동시켰다. 그리스는 지도 프로그램에서 지원하질 않고, 원래 계획은 바리가 아니고 브린디쉬 였기 때문에 바리 지도를 저장해 오지 안았다. 나폴리부터 GPS를 사용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유스호스텔 주소의 거리 이름을 입력하니 단박에 가르쳐 준다. 물론 현재 위치와 함께. GPS가 가리키는 방향 대로 해안을 따라 기차역 반대편 외곽으로 항했다. 더위를 즐기려는(?) 사람들이 해안으로 쏟아져 나와 북적대고 차도는 주차장이나 다름이 없어보인다.
많은 연인들이 해안가 난간에 기대어 애정행각을 벌이는데 키스는 그냥 기본이다. 괜히 외로워졌다…
호스텔 근처에 다와서는 친구들과 예기 중이던 할아버지께 호스텔 주소를 보여주자, 정말 고맙게도 호스텔이 보이는 곳 까지 날 데리고가 손가락으로 가리켜준다. 비록 말은 한마디도 안했지만 너무 고마워서 고개를 크게 숙여 인사를 했다.
나폴리 호스텔은 나폴리의 인상에 비해 크고 깨끗한 시설을 갖추고 있는데, 다만 늦게 도착한 관계로 도미토리 보다 2유로 비싼 더블 룸에 여정을 풀었다.
어제 배에서도 겨우 수건으로 닦기만 했는데, 샤워를 하니 살 것 같다.
목이 말라 로비에 내려갔는데, 동양인이 보이길래 음료수를 뽑고 짐을 보니 한글 가이드 북이 보였다. 우리나라 사람을 만난건 처음이었다. 너무 반가워서 거의 한시간 넘게 앉아 이야기를 나눴다.
자기는 이제 로마에서 여정이 끝나는데, 내가 자전거로 올라갈 예정이라 했더니 불가능하다고 했다. 기차에서 잠을 자면서 체력을 비축해도 이것저것 보러다니기 귀찮아지는데, 자전거로 이동하면 오죽하겠냐는 것이다. 맞는 말이긴 하지만, 난 자전거로 여행하는 것에 목적이 있는 거니까. 참고는 해야지. 나보다 여행 선배인데…
이야기 도중 나폴리가 너무 좋아 하루 더 묶을 예정이라는 한국 여자 분도 만났다.
뭐… 여행의 묘미라면 경치나 유물들을 감상하는 것 이외에 이렇게 사람들을 만나는 것도 있겠지.
오늘 만났던 사람들은 모두 나에게 강한 인상을 남겼다.
자정이다… 내일은 나폴리 관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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